[저축은행 정상화] 부실 책임 공방…"대주주·당국 합작품"
[저축은행 정상화] 부실 책임 공방…"대주주·당국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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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방치 속 대주주 방만경영 화근

[서울파이낸스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로 위기에 처한 저축은행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섰다. 지난 14일 삼화저축은행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데 이어 19일에는 매각작업에 복격 착수했다.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인수에 참여할 의사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당국이 연초부터 강력한 저축은행 부실 해소 의지를 피력한 만큼 부실위험이 있는 7개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속도만 낼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저축은행의 부실을 초래한 원인을 면밀히 짚어 금융 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의 책임은 우선 방만한 경영을 일삼아온 대주주들에게 있다는 데 이견이 없으나,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금융당국에 대한 비난여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 칼은 빼들었지만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 의지를 강력히 밝히고 나선 것은 PF 대출로 인한 저축은행 부실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저축은행업계 전체 부실대출 규모는 6조7000억원으로 이 중 PF부실 채권 규모가 3조8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국이 그간 저축은행 부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미뤄온 것은 부실정리에 투입될 예금보험기금이 넉넉지 않았고,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경우 저축은행들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빠른 시일 안에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국은 '공동계정'이라는 해법을 통해 예보기금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행 부실 해소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예금보험공사가 쏟아부은 기금은 이미 17조를 넘어섰다. 올해는 3조5000억원의 구조조정 기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세금이 저축은행 부실처리를 위해 쓰이게 되는 셈이다. 저축은행 부실을 정리하는 데 대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저축은행 PF 부실의 심각성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규모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저축은행업계의 PF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6월 말 8.7%에서 12월 24%까지 급등했다. 또 자산건전성을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경우 삼화를 비롯해 일부 저축은행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다. 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책임론 "여지껏 뭐했나"

저축은행의 부실 책임은 우선 방만한 경영을 이어온 대주주에게 있다. 하지만 사태를 방치하고 부추긴 금융당국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지난 2003년 카드사태로 서민금융부문이 부실해진 저축은행은 새로운 수익원으로 PF 대출에 집중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 여신 8% 이하인 이른바 '88클럽'으로 분류되는 우량 저축은행에 대한 대출한도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부실 대출의 고삐를 풀어버린 셈이다.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저축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PF 대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PF 대출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돌변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2000년대 초 담보 대출만 했던 저축은행이 개인 신용대출로 눈길을 돌리게 한 것은 당국이었고, 부실 저축은행을 퇴출시키지 않고 다른 저축은행이 인수하도록 유도한 것도 당국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PF 대출은 리스크가 크지만 신용대출에서 쓴 맛을 보면서 더 이상 저축은행만의 먹거리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부실한 관리감독 아래 부실이 확대 재생산됐다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저축은행 부실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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