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보금자리주택, 그 '불편한' 진실
[프리즘] 보금자리주택, 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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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해중 기자] 17일 본청약을 시작한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지구 보금자리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부동산 시장의 노른자위로 불리는 강남권에서 분양가가 반값에 가까운 수준으로 책정되며 '로또대박'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번 보금자리주택지구에 투기수요자가 몰린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실수요자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이 정권 친서민 핵심 사업이지만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이 청약에 몰리다보니 '친서민'이라는 당초 취지와 상반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강남지구의 경우 지역우선공급비율이 조정되며 고액 청약저축 대기자들까지 본청약을 노리고 있어 '친서민' 주거 정책이라는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정부가 일정 소득을 넘으면 보금자리주택의 청약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무성하다.

가장 큰 쟁점은 무주택자로 청약 통장만 있으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어, 고액 예금이나 오피스텔, 상가 등을 가진 중산층도 대거 참여해 정작 저소득층의 당첨 확률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주변시세보다 더 싸게 당첨이 되다보니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해 중산층 이상에서 보금자리주택이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곳곳이 암초인 보금자리주택지구. 본지에서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심층 해부해 봤다.

■ 본질적인 약점은 '경제정의'

강남·서초 지구의 청약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는 이번에 분양되는 물량이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으로 분양가가 책정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금자리주택지구의 분양가가 시세보다 싸게 책정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린벨트를 해제해 토지비용을 대폭 줄였다는데 있다.

땅주인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없는 그린벨트는 개발가능한 주변의 다른 토지보다 값이 싸다. 그린벨트지역을 싼값으로 보상하고 수용한 다음 그 땅에 지은 아파트를 원가로 분양한다는 것이 보금자리 주택정책의 핵심이다. 분양가는 땅주인에게 가는 보상금과 땅값의 차이만큼 낮아지는 것이다.

일반 상품이라도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바겐세일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물며 강남 아파트라면 더욱 그렇다. 이를 알기 때문에 정부는 실수요자를 제외한 투기꾼들은 배제하도록 분양신청 자격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또 분양 후 장기간 전매하지 못하게 조치하고 있다. 장기간 전매금지는 분양 이후 보금자리 주택의 값이 분양가의 두 배에 육박하는 시세수준으로 뛰어오르는 데 대한 대비책이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가격 프리미엄이 토지등소유자가 아닌 실수요자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는 데서 발생한다.

즉 경제정의 측면에서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지구의 분양 물량이 제한적이므로 분양가를 낮춘다고 일반 아파트 시세가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땅값 상승분이 지주가 아닌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며 실수요가 아닌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에 본청약을 하고 있는 강남지구가 가장 대표적이다. 보금자리주택지구의 본질이 이런 까닭에 갖가지 제한조치에도 불구하고 당첨자는 결국 큰 차익을 누리게 되고 보금자리 주택은 일종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 보금자리주택지구 정상 공급 가능한가?

보금자리주택지구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과연 친서민 주거정책이 성공할 수 있냐 여부다.

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진단의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강남권 물량을 제외한 여타 지구의 경우 미분양 수모를 당한 바 있고 공급주체인 LH가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부천 옥길이나 시흥은계, 남양주 진건같은 수도권 보금자리물량이 실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미분양 되는 상황에 직면한 점에 주목한다.

보금자리주택지구가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며 프리미엄이 큰 강남권만 선방하고 실수요를 위한 공급은 외면당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 강남권 물량을 제외한 보금자리주택지구가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당초 서민주거안정을 목적으로 '공급폭탄'을 선언했지만 민간건설사요구에 굴복, 공급템포를 조절하며 이마저도 말잔치에 그쳐 시장의 피로가 커지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4차 지구 선정 물량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사전예약 여부조차 확정짓지 못해 일각에서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서울 중랑구 망우·신내동 일대(양원 지구)와 경기 하남시 감북·감일동 일대(하남 감북지구) 등 2곳을 보금자리주택 4차 지구로 지정하며 보금자리주택 1만6000가구를 포함, 모두 2만3000 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2차 지구(4만1367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시장에서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속도를 늦추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현 정권의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임을 감안하면 이런 속도조절이 자칫 친서민 정책의 후퇴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론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차원에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늦춘 이유는 민간건설사들의 요구 때문"이라며 "민간건설사들이 분양시장의 침체를 이유로 보금자리주택 물량공급을 줄여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주변 민간 아파트 분양가보다 싼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시장이 침체됐다는 민간건설사들의 입장을 받아들였음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라며 "이런 이유로 4차 보금자리주택지구 선정 이후 친서민 정책의 핵심 사업이 좌초하고 있다는 비난의 눈초리가 거세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빨간불 들어온 LH, 또 다른 암초

한편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LH의 재정상황도 문제다. LH가 보금자리주택사업의 짐을 모조리 지고 있지만 재무상황이 악화되다보니 공급물량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LH가 부채난으로 보금자리주택 건설 추진여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자 정부는 민간자본 유치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 카드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냉소다.

정부가 현금을 보유한 민간자본을 보금자리주택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그만큼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에서다. 게다가 사업 특성상 민자유치가 쉽지만은 않다는 점도 이 카드를 '버린 카드'라고 보는 이유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점도 이미 내부적으로 공급계획 수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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