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시기 선택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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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정부가 7개 부처를 망라한 종합 물가대책(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고 한국은행은 같은 날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금리인상의 ‘때’를 놓고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정부의 물가대책을 놓고는 시기문제를 왈가왈부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말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늘 그렇듯 1인자는 놔두고 2인자만 때리는 한국 언론의 비겁한 모습을 또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을 제외하면 늘 언론의 뭇매를 감당하는 것은 최고 권력의 한 단계 아래였던 전례가 현 정부 들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이번 금리인상은 정부의 물가대책이 뒤늦게 나온 것을 감안하면 결코 이례적인 것일 수 없다. 물가상승률보다는 성장률 목표를 맞추는 게 급선무였을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정치’를 위해 ‘경제’를 희생시키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난해 이미 서민들이 감당해야 할 물가는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한국은행은 수출목표만 쫓는 ‘정부 바라기’로 일관했었다. 그런 한국은행이 전례 없이 연초부터 금리를 인상하니 증시에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경제 전체를 본다면 이번 금리인상은 마땅하다. 계속 늦어졌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

정부의 물가대책도 상식적으로 보자면 이미 지난 하반기쯤에 한번쯤 나왔어야 할 일이었고 늦어도 연말 물가라도 잡기 위한 행동이 필요했다. 그랬으면 해가 바뀌면서 이미 바짝 올라버린 주유소 기름 값을 두고 대통령이 뒤늦은 소리 하는 볼썽사나운 꼴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늦은 물가대책도 엉성한지 내용을 두고 타박들이 심하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했다지만 당장의 물가에 보탬이 되기 어려운 내용이 급히 종합대책에 묻혀 들어간 듯 보이는 것도 있다. 또 각 부처가 총출동하다보니 빠질 수 없어 끼어든 것으로 보이는 생색내기 대책도 보인다.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주거의 불안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해법이 시원찮다는 비판이 길게 꼬리를 잇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나오는 비판이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더 완화되길 바라는 그들의 입장 때문이니 차치하고 봐도 문제는 남는다.

대통령은 소형 평수 아파트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수요는 몰리는 곳으로만 몰려 전세대란이니 뭐니 소란스러운데 그게 진정 해법이 될지 의문이다.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얘기일지 모르나 젊은 세대에게 ‘내 집’의 개념은 이미 상당히 달라져 있다. 그들을 겨냥한 정책을 마련하려면 구매 위주의 주택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두른 탓에 구멍 숭숭 난 종합대책을 보완하자면 여러 부처에서 그 후속조치들을 마련해야 하는 데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종합대책을 발표하자마자 다음날 범정부 물가회의를 또 열어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은 올해의 재`보선을 시작으로 내년의 총선과 대선까지 줄지어 기다리는 정치일정으로 미루어볼 때 역시 경제보다 정치의 비중이 더 커서일 터여서 더 미덥질 못하다.

서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가의 가파른 상승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껴왔건만 꼭 이렇게 발등에 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지 답답하다. 이러니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부자들의 정부 소리를 듣지 않나 싶다.

호남 지역을 제외한 전국적인 구제역 파동도 초반 대책이 제대로 세워졌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미 여기저기 퍼져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허둥대다 더 이상 손쓰기도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한 귀퉁이에서 미국 쇠고기 판매를 늘리기 위해 방치한 거 아니냐는 푸념까지 나온다는 소문이 돌까 싶다.

매사 정치적 판단이 앞서다보면 경제`산업적으로 실기하고 사회적 불안정성을 높여 정치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구제역과 관련해 나도는 흉흉한 소문은 그런 악순환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단이 아닌가 싶다.

백년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정권 5년의 청사진은 있었을 텐데, 유능한 정부 관료들이 이쯤에서 물가대책 한번쯤 나올 것을 예상 못했을 리도 없었을텐데 어째서 대책은 저리 허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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