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모르는 부실금융 해법
'진화'를 모르는 부실금융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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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무부를 드나들며 보면 관리들이 상당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행정고시 상위 합격자들이 줄줄이 들어가던 당시 재무부 관리들은 엘리트의식도 상당했지만 그만큼 꾸준히 공부하는 모습이 돋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도 일부 부서에서 보면 유력 대기업이 내놓은 자료에 쉽게 동화되어 객관성에 흠집이 보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핵심부서일수록 이론적 성과물을 앞다퉈 내놔가며 열의를 보이곤 했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문화가 변하기야 했겠지만 필자가 드나들던 시절엔 장관이 앞장서서 방문을 개방하고 정책방향을 둘러싸고 적극적으로 토론도 한다고 후배 관리들이 자랑하곤 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동안 재정경제부로, 그리고 경제기획원과 합쳐지면서 기획재정부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그곳의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근래 생산돼 나오는 재정·금융정책들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책이 성장·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자본주의가 가장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이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상품을 최저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극단적인 기업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현 정부가 지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면 그런 원칙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지는 게 이것저것 입맛대로 골라가며 섞어먹는 일방적 권력의 무질서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 심정이 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런 정부의 '입맛 따라 골라먹기'야말로 몇 십 년간 변함없이 지켜지는 유일한 원칙이 아닌가 싶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간 등장했다 밀렸다 하는 그 어떤 주의나 논리도 그저 괜한 덧칠에 불과한 것같다.

금융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소위 '금융당국'이라고 부르는 금융위원회 신임 위원장으로 금의환향해 금융정책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김석동 위원장이 다시 말거리가 된 듯하다. 관리로 있던 당시부터 금융정책을 맡던 그가 금융위원장이 돼 4개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을 개별 면담하자 그 이틀 후 4개 금융지주회사가 저마다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부실저축은행 문제 처리를 위한 '대책반장'으로도 불린다는 그가 내놓은 해법을 일부는 좋게 표현해서 '김석동 효과'로도 포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도 않은 데다 이미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부실 저축은행의 퇴출 대신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에 의한 인수로 물타기를 시키면 그 부담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뻔하다. 금융산업 전체가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부실 저축은행 퇴출이 이루어질 경우 그 사회적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사회·정치적 위험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해가 간다.

하지만 부실 저축은행 문제는 금융 산업 전체로 보자면 농익은 고름주머니나 다름없다. 이런 고름을 제거하는 대신 항생제도 아닌 진통제나 처방하면 고름은 더 크게 자리 잡을 뿐이다.

사람 몸도 농익은 고름을 제거하지 않으면 몸 전체가 고열에 시달릴 수 있다. 그래서 수술을 극도로 싫어해 외과술이 거의 발전하지 않았던 옛 우리 전통 의술에서조차 고름은 빼줘야 하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처치했다.

일단 고름을 빼고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항생제를 쓰는 게 일반적인 처치일 성 싶지만 정부는 늘 정치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일반적 상식과는 다른 처방을 내놓곤 해왔다. 짧은 고통은 진통제로 다스려지지만 그것도 근본적 치료가 끝난 후에 할 일이다.

그럼에도 근본적 치료를 회피하고 공공재적 성격의 은행으로 하여금 사기업적 성격의 저축은행 주인들이 책임질 몫을 떠안게 만드는 것은 매우 불평등한 정책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공공 자산의 편취, 유용이나 다름없다.

금융소비자는 지켜주되 금융회사의 자본까지 지켜줄 일은 아닐 터인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지 구분이 없는 듯하다. 이런 일이 개발독재 시절에나 몇 십 년이 흐른 지금에나 똑같이 되풀이 된다는 것은 한국의 금융정책이 발전 없이 지체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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