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퇴직연금시장, 연내 현대家 밀려온다
[단독] 퇴직연금시장, 연내 현대家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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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현대車 적립금 최소 1조원 이상
하이·HMC證 상위권 도약…중소사는 '울상'

[서울파이낸스 김기덕 기자] 불씨가 꺼져가던 퇴직연금시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1조원이 훌쩍 넘는 퇴직급여 충당금을 쌓아둔 '최대어'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연내에 퇴직연금시장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기업의 계열 자회사인 하이투자증권과 HMC투자증권의 최대 수혜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내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순위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시장은 21조원 규모. 이 중 증권사 비중은 2조8000억원으로 시장점유율이 10%대를 소폭 웃돌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가들이 퇴직연금시장에 뛰어들 경우, HMC투자증권이나 하이투자증권은 단숨에 업계 15위권에 진입하게 된다.

타사들도 이같은 대어를 낚기 위한 '불꽃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중소형 증권사들은 '약육강식'의 시장구도에서 도태돼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사례가 잇따라 '불공정게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이투자·HMC證 후광효과…업계 '지각변동' 예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급여 현대중공업그룹의 퇴직급여 충당금은 지난 9월 말 현재 현대중공업이 1조2868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삼호중공업(1671억원), 현대미포조선 (1195억원) 등 총 규모가 1조5734억원에 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달 초부터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입찰제안요청서(REF)를 사업자들에게 요청하기 시작했다"며 "정확히 추산할 수 없지만 중간정산 금액이 5000억원 이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7~8000억원의 자금이 퇴직연금시장에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역시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이다. 퇴직연금본부 인력을 올해 초 8명에서 30여명까지 늘렸고 세무사 등 전문인력을 충원하는 등 퇴직연금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나지 않았지만, 이미 잠정적으로 현대중공업의 사업자 선정은 마친 상태"라며 "사업자가 10개 미만으로 정해진 가운데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은행·보험 등이 다수 포함돼 있고 증권사 중에는 미래에셋, 삼성증권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유치자산 22억원 규모로 54개 사업자 중 꼴지수준에 머물고 있는 하이투자증권이 현대중공업그룹 적립금을 절반수준으로 가져간다면,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중 운용관리 실적이 15위권 이내로 점프하게 된다.

HMC투자증권은 더욱 눈부신 약진이 기대된다. 현대차는 9월 말 현재 퇴직급여 충담금이 1조8634억원에 이르고 있고, 이 중 중간정산을 제한 1조원 정도가 HMC증권으로 모두 흘러들어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사업부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중간정산을 제하고도 퇴직연금 전환 규모가 1조원에 이르고 있고, 기아차 등 그룹사 차원의 물량을 모두 합치면 3조원에 육박한다"며 "특히, 현대차그룹은 대부분의 퇴직연금 자산을 HMC증권에 몰아줄 것으로 보여, 실제 소수 은행·보험 등을 제외하고는 증권사들에게 입찰제안서를 받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 대상은 운용관리기관과 자산관리기관으로 나뉜다. 하지만 퇴직연금적립금은 운영관리기관의 레코드(운영실적)에 쌓이고, 자산관리기관은 자금을 신탁받아 교육, 서비스, 상품을 고르고 파는 등의 역할을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퇴직연금 운용관리 부분은 HMC투자증권이 모두 독식할 것으로 보인다"며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연내 HMC투자증권은 퇴직연금시장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HMC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유치자산은 1631억원으로 사업자 내 2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1조원이 더해지면 단순 수치 계산상으로만 업계 5위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중소형사에겐 '그림의 떡'…"불공정게임" 불만

퇴직연금시장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중소형 증권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시장파이가 예상보다 작아진 마당에 금리경쟁에서 은행과 보험에 밀려난 지 오래고, 대기업들이 퇴직연금을 서두른다 해도 그룹 계열사가 아닌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는 계산에서다. 이로 인해 '불공정게임'이라는 업계 내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시장이 올 초 최소 30조원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기업들의 불참으로 20조원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며 "지난 5월 당국이 고금리경쟁에 제동을 걸었지만 은행 등은 내부거래 기준금리에 지점장들의 전결금리를 합산하는 탄력적인 금리운용이 가능해 중소형사들은 유치마저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보증권은 급기야 퇴직연금 사업부를 폐지한 상태다. 교보증권 관계자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존 고객들의 퇴직적립금을 타사로 이전하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사업자체의 비전이 불투명해, 결국 사업부 폐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영증권과 NH투자증권 등도 관련 부서를 5명 수준의 전담 인력으로 근근이 꾸려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형사인 우리투자증권이나 대우증권도 퇴직연금사업본부를 리테일 및 법인사업본부로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HMC투자증권이나 하이투자증권이 퇴직연금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 수 있던 것은 모회사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라며 "은행이 꺽기 등으로 중소형사들을 대부분 독식하고 있고, 대기업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한다 해도 신용등급이나 사업자 평가에서 상위 업권 사업자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성장성을 보고 초기 시장 진입시 적지 않은 비용을 썼지만, 현재 사업은 멈출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계륵'과 같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올해 10월 말 현재 퇴직연금 총 적립금 규모는 20조9323억원으로 작년 말 14조248억원에 비해 49.2%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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