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의 비극, 그 밑바탕엔
연평도의 비극, 그 밑바탕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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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늘 그 피해를 키우는 밑바탕엔 인재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 행정적 편의주의, 지휘체계의 부실, 현장 인력들의 무책임이나 불성실 등 그 어느 하나의 구멍만 뚫려도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구멍이 평상시에는 잘 눈에 띄지도 않기에 대충 넘어가게 되는 일들이기 십상이다.

연평도 주민 모두가 섬을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번 사건은 물론 천재지변이 아니다. 그 발단 및 드러난 원인은 물론 북한군의 집중적 포격이다. 하지만 피해가 커진 데는 역시 군통수권으로부터 현장 상황까지 일반 국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허점들이 드러나 보였다.

연평도 주민들은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남북 해군 간의 교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지만 그때만 해도 섬을 떠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대청해전, 올해 3월 천안함 사태에 이어 이번의 해안포 공격까지 이어지면서 더는 무서워서 연평도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들을 내리는 듯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각각 한차례씩의 교전은 마치 6.25를 기억하라는 듯 공교롭게도 모두 6월에 발생했지만 어민들은 꽃게잡이 철을 놓친 것에 발을 굴렀지 불안에 떨지는 않았다. 장기적으로는 평화공존을 향해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며 계속 남북관계는 긴장도를 높여갔고 지난해 말부터 일 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연속 세 번이나 충돌이 발생했다. 먼저 공격을 한 북한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최근 이런 사태가 빈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만으로 범위를 좁혀서 살펴보도록 하자.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교전 중인 군에 대해, 그것도 이미 교전수칙이 있고 그걸 따르고 있을 군을 향해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해서 시끄럽다. 그 한마디가 군의 대응을 위축시켰다고 정치권도 여론도 벌떼같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도 언론도 그런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북 치고 장구 치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이미 여론이 달아올라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전투 다 끝나고 나서 “몇 배로 응징하라, 막대하게 응징하라”고 뒤늦게 말을 바꾸는 군 최고 통수권자를 보는 것은 더 현기증 나는 일이다. 밖에서 맞고 문 들어서는 아이에게 당장 나가서 때려주고 오라고 내쫒는 못난 부모 꼴과 다를 바가 없어 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너나없이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소신으로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니 또 논외로 치자. 그러면 남는 것은 군의 문제다. 국방장관도 경질되는 마당에 군에 대해 뼈아픈 소리를 해야 하는 심정은 복잡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면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적잖다.

북한의 집중 포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현지 부대가 갖고 있던 포조차 제대로 못 쏘고 소극적 대응을 해서 우리 군의 피해를 키웠다면 그건 군 내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교전수칙에도 분명 선제공격을 당한 상황에서 소극적 대응을 하라고는 하지 않은 줄 안다.

거기까지는 군 수뇌부의 문제이니 정치가 책임지라고 하자. 그런데 이미 북한군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으나 무시됐다거나, 1차 포격 때 대 포병 레이더가 오작동 했다거나, 대응사격에 나선 K-9 자주포가 현지에 배치된 6문 중 3문만 사용됐다거나 하는 보도들이 뒤늦게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무기의 성능이나 고장률에 문제가 큰 것인지, 아니면 현지 군부대가 해이해져서 보수에 게을렀던지 어느 쪽이라도 심각한 문제다. 설마 최전방이라 할 연평도의 해군들이 게으름을 피웠을까 싶지만 그래도 군 지휘체계나 질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는 거듭 거듭 점검하고 점검할 일이다.

이렇게 군의 얘기를 하면서도 진정 걱정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북의 도발 징후를 발견하고도 일부러 사태가 터지기를 기다린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기우이길 바라면서도 당장 북진하자고 나서기라도 할 듯 흥분하는 일부 선동가들을 보면 어쩔 수없이 미심쩍은 구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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