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합의와 한국은행 보고서
G20 합의와 한국은행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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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300억 달러에 이르고 성장률은 6%대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찬 보고서를 내놨다. 얼핏 보아 최근 경주에서 폐막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는 경상수지 목표제에 합의했다는 사실과 비교되며 뭔가 걸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경상수지 목표제는 그 실행 가능성도 아직은 미지수인데다 설사 실행된다 해도 그때까지는 넘을 고비도 많고 또 시간도 적잖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장에서 보자면 당장은 늘어나는 흑자 전망에 높은 성장률 기대로 국민들에게 장밋빛 전망을 더 쏟아내도 좋을 시기일 터다.

보기 나름이지만 지금 흑자규모를 늘리는 것은 마치 전쟁 막바지 종전 협상을 앞두고 고지 하나라도 더 차지하겠다고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왕 세계가 금융`통화 전쟁을 벌이는 마당이라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신나는 소식이 혹 아래 벽돌 빼 위로 높이 올라가기만 하는 불안한 성과주의가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인다는 것이다.

일단 9월까지 연속 8개월째 경상수지 흑자행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9월 중 흑자규모는 전월 대비 200%를 넘는 40억6천만 달러에 이르렀으니 한국은행이 경상수지 전망을 밝게 보는 것은 특별히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이미 1월부터 9월까지의 흑자가 237억3천만 달러에 달한다니까.

다만 서비스수지는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데 단지 상품수지가 호조를 보여 전반적인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환율전쟁의 와중에 박리다매 식으로 끌어올린 수출고가 국가경제 체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지내는 편이다. 혹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배만 부르면 된다는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서비스수지 적자의 요인과 상품수지 흑자 요인을 들여다보면 한국사회 양극화의 그림자가 더 짙게 보인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환율에 의지해 상품수지 흑자를 키우는 뒷전에는 앉아서 실질임금이 깎여버린 서민들이 있다. 자산소득이 있는 이들이라면 별개지만 오직 노동임금에 생활을 목매고 있는 이들에게 이는 치솟는 물가만큼이나 무서운 호환마마다.

서비스수지 적자에는 대체로 여유 있는 계층이 크게 기여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방학이며 명절 연휴를 이용한 해외여행, 아이들의 소질과 능력이며 취향과 의지 따위는 무시된 채 경쟁적으로 몰려가는 유학, 장소만 외국일 뿐 국내 연수와 별 다를 바 없이 한국학생들끼리 몰려 배우는 어학연수 등은 아무래도 먹고 살만한 계층의 몫이다. 비난 받거나 눈치 볼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먹고 살기 바쁜 계층과 무관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행이 내놓은 신나는 보고서를 보면서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일단 3분기 성장률은 2분기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하반기에는 상반기같은 고속 성장은 힘들 것이지만 민간부문의 성장모멘텀이 살아있다고 한은 관계자가 말했다니 우선 믿을 수밖에 없겠다.

재고 증가도 마이너스인데 이게 설비투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그러하니 민간소비도 당연 늘어난 셈이다. 재고증가가 풀꺾인 것으로 성장률을 깎아먹었다지만 민간소비가 늘어난다면 그 또한 금새 회복될 일이니 걱정을 접기로 하자.

그런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중에는 물건 팔리는 속도보다 창고에 쌓이는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그러니 9월 중 재고증가 마이너스는 좀 수상하다. 기업이 향후 경기를 불투명하게 보고 그랬든 혹은 자금 사정이 악화돼서 그랬든 생산 조절을 통해 재고를 줄였다는 혐의가 있다.

신나는 수출전선도 올 연말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주요국의 경기 둔화도 그렇고 G20 합의를 통해 일단락됐다고 평하는 환율전쟁은 아직 그 불길이 꺼진 게 아니다. 오히려 전쟁은 소강국면에서 더 큰 희생이 발생하는 법이다.

힘없는 민간인들이 이유 없이 많이 당하는 시기도 바로 이때다. 환율전쟁, 경제 전쟁이라고 크게 바를 바도 없다. 이럴 때 국가는 국민보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군대 대신 기업이 나선 전쟁이라는 점만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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