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에 기댄 경제
가계 빚에 기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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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사건이 시끌시끌한 이슈일지 모르나 금융소비자인 여느 시민의 입장에서는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완화 조치가 몰고올 훗날의 재앙에 더 신경이 곤두선다.

시행 첫날은 은행 창구에 문의도 별달리 늘지 않았다는 보도이지만 어느 순간 봇물처럼 대출수요가 몰릴 가능성은 충분히 내재돼 있다. 워낙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은 주식시장과 달리 움직임의 속도가 둔한 듯싶다가도 일단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미친 듯 치달려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아파트 구입 열기가 전반적으로 시들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한 해석이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꽤 큰 거리가 있는 듯하다. 다수의 시민들은 부동산 거품이 걷히면서 정상적인 가격을 찾아가는 것으로 인정하는 데 비해 정부는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시민들을 향해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택 소유자들의 불편이 크다는 점을 DTI 규제완화의 이유로 설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사하고 싶거나 이사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 시민들도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현실에 불편해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간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경향을 지켜본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굳이 아파트를 구입하느라 무리하기보다는 전세를 살면서 여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터였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편을 겪는 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불편과 손실도 가급적 최소화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사회적으로는 부동산 거품을 재연하고 개개인들로서는 가계 빚의 증가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DTI규제완화가 유일한 정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IMF 구제금융 하에서 부동산 시장 밖의 경기활성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은 카드사용 장려였다. 그리고 2003년 카드대란이 일어나 국가 경제 전반이 큰 홍역을 치렀다. 빚으로 소비를 늘리게 해서는 당연히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 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말의 향연이 벌어졌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로 근검절약만이 미덕이던 시대의 가치관을 전복시키는가 하면 대망의 80년대라는 말로 70년대 불평등의 그늘을 가리려 애썼던 시절이었다.

그때 ‘빚도 자산’이라는 말이 기업에서 가계로 퍼져나갔다. 처음엔 외채의 위험을 가리기 위해 대중들을 가르친 정치적 수사였다면 그 언어에 반응하는 대중들은 기대수익이 큰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빚을 정당화하는, 나아가 능력의 상징으로 삼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큰 빚을 진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시 우스갯소리를 넘어 실제 상황으로 보였던 현상이 월급쟁이 남편은 회사근처 식당에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먹는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부동산 거래를 하면 남편 몇 년치 연봉 이상을 벌었던 전업주부(?) 아내는 친구들과 어울려 호텔 뷔페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당시 현직에서 일하던 필자는 졸지에 무능한 여자로 전락당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빈부간 양극화는 점점 더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카드대란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어 IMF를 극복한 국민의 정부 경제정책 중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이번 DTI규제완화로 부동산시장에 다시 투기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 간 격차를 더 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을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 금리인상이 있고 그 뒤를 따라 DTI 규제완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업자 수가 금방 줄어들 가능성도 적고 현재 소득이 있는 개개인의 소득 증가 속도는 더더욱 낮을 것이다.

앞길이 안보여 로또에 인생 다 걸고 싶은 이들이 늘어만 가는 마당이다. 여기에 빚 얻기 쉬워지면 부동산 투기열풍이 일지 않아도 결국 높아진 금리로 더 큰 빚을 쓰고도 소득은 늘지 않아 빠르게 파국으로 치달아가도록 정책적으로 방치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물론 DTI 규제완화는 집 하나라도 가진 이들이 대상이다. 실은 그래서 간신히 중산층 대열에 붙어있던 이들이 손을 놓아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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