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입은 하나만 허한다?
나라에 입은 하나만 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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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전 뉴스가 부활한 것 같다.” 어느 사적인 자리에서 스스로가 보수우익이라고 자처하는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매우 강한 60대 남성의 불평이다. 그러자 “아직도 TV뉴스를 보세요?”라는 응수가 나온다. “신문 뉴스는 믿을 만 하구?”라는 또 다른 이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뒤따른다. 그러자 처음 불평하던 이가 “나 같은 보수우익을 자꾸 진보 편에 서게 만든다”고 볼멘소리를 더 보탠다.

이런 분위기 속에 근래 KBS 블랙리스트 파문이 커지고 있다. 코미디언으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미화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로 인해 KBS로부터 소송을 당했다고 해서 일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글의 내용으로 봐서는 KBS 입장에서 속 터질 일일지는 몰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준인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는 것인지 밝혀 달라.” 소문이 있으니 확인해 달란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게 어색해 보인다.

문제는 오히려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문제제기 자체가 소송의 대상이 되고 문제제기를 일으킬만한 일련의 출연진 물갈이가 편향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을 듯하다. 지난 10년 역대 정부에 우호적이라고 현 정부 혹은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판단하는 듯 보이는 각 분야 출연진이 줄줄이 KBS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뚜렷이 보인다.

김제동, 윤도현, 김C, 유창선, 진중권 그리고 김미화. KBS에서 갑자기 밀려난 출연진은 연예인에서 시사평론가까지 그 명단이 만만찮다. 실상은 KBS를 넘어 방송계 전반에 그 파장이 번져가는 양상마저 보인다. 심한 경우 케이블 채널에서도 같은 이들이 중도하차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미 KBS와 MBC 사장 교체에 무리수를 두었던 정부로서는 그 정도는 별 일도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꾸 이 입, 저 입을 쫒아 다니며 막다보면 그 후유증이 어떻게 나타날지 정도는 염려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방송 문제와 아울러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정부의 희망과 다른 시각에서 글을 쓰던 인터넷 필진들에 대한 각종 압박이 횡행해왔다. 정권 초기 미네르바 소동에서부터 ‘유인촌 장관의 굴욕’ 동영상 파문까지 별게 다 검찰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촛불 시위를 무리하게 진압하고 이번 지방선거 덕에 풀리긴 했지만 서울광장을 더 이상 광장일 수 없게 막으며 여론을 향해서 “그 입 다물라”고 호통 쳐 온 것도 결국 다 같은 맥락이겠다. 정부가 말하면 반론 한마디도 하지 말고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방송에 재갈이 물렸다고 보는 시선이 결코 소수는 아닐 터이니 ‘방송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요즘 메이저신문들이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보도 태도는 개발독재 시절로의 회귀, 그 이상으로 보인다는 비판들도 많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보도의 방향이야 해당 신문의 정체성이 그렇다고 넘어가더라도 경제 기사는 또 다른 문제다. 기사가 보도자료 베껴 쓰기에 머문다면 굳이 기사라고 부를 이유도 없다. 그런데 요즘 경제기사들은 정부 당국의 자료 베끼기를 뛰어넘는 분석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재벌가 신문은 재벌의 이익에 충실하다고 또 한 점 접어주자. 그렇게 따지면 다른 신문들은 광고가 재벌 쪽에서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판이니 또 생존을 위해 그렇다고 봐줘야만 한다.
그 뿐인가. 재테크 기사마저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증권업계로부터 넘겨받은 정보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부동산도, 주식도 늘 곧 좋아질 거라는 장밋빛 전망만 넘실댄다.

그렇더라도 경제 전반의 흐름은 제대로 그 이면까지 짚어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거시경제든 미시경제든 경제 전반은 반드시 잘 돌아가야만 정부가 안전하니 경제 보도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시 걸러진다. 온전한 비평적 언론의 기능은 어디에도 남아나지 못한다.

스스로 비판적 분석을 할 능력이 안 되면 국내외의 좀 더 다양한 분석과 의견들을 수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취사선택이 어쩌면 그렇게 정부 입맛에 꼭 맞을 것들로 한정되는지 참 신기하다. 13년 전에도 잘 되고 있다는 한 목소리만 듣다 IMF에 손 내미는 국가 위기를 겪었었건만 또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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