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민심의 폭발
입 다문 민심의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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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도, 언론 스스로도 화들짝 놀라게 한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였다. 6.2 지방선거 결과는 숱한 분석과 안타까움을 쏟아내며 막을 내렸지만 곳곳에서 벌어지는 박빙의 승부에 모처럼 심야 개표방송을 지켜보는 재미는 설친 밤잠의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한나라당이 방심했다거나 민주당 지지가 아니라 반MB 정서의 승리라거나 등등 평가는 구구각각이다. 하지만 언론에 관여하는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선거 직전까지 진행된 여론조사며 정치권의 예측들이 신뢰성을 잃을 정도로 빗나갔다는 점에 더 관심이 쏠린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집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여러 통씩 쏟아지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간 집에 있는 사람들의 응답이 소위 말하는 여론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조사결과는 현실의 표심과 일치하지 않았다. 왜일까.

여론조사기관들의 숱한 여론조사가 그 대상자를 어떤 방식으로 가려내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대체로 전화응답에 의존한 조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전화응답에 답할 사람들은 대개 낮 시간 집에서 전화를 받을 사람들이었을 성 싶다. 직장인도 아니고 젊은이들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체 유권자의 표심을 읽어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번 여론조사와 실제 표심의 심한 오차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유권자들은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유권자들이 솔직한 응답을 피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럴 때 역사적 경험은 해답을 찾는데 일정 정도 도움이 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 현대사의 여러 굴곡 속에서 민심이 솔직해졌던 시기는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대체로 언론이 제몫을 하고 정부가 국민의 발언에 족쇄를 채우지 않는 시기와 여론조사의 결과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많은 권력들이 그러하듯 현 MB정부 역시 아마 언론이 통제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심은 언로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가질 충분한 사유들이 존재했다.

공중파 방송인 KBS, MBC는 물론 지상파 방송인 YTN의 경영자 인사에 정부가 공공연히 개입하면서 큰 반발과 소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뿐 만인가. 민감한 사안이 출몰할 때마다 인터넷 상의 글들이 검찰의 조사대상으로 오르고 포털사이트도 사실상의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공중파나 지상파 방송이 일방적인 뉴스제공 매체라면 인터넷은 쌍방향 매체다. 즉, 인터넷은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뉴스만을 수용하는 매체가 아니라 뉴스를 평가하고 비판하며 뉴스 수용자들 간에도 대화와 토론을 나누는 여론의 ‘광장’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인터넷 상의 글에 대한 검열을 통해 정부가 여론의 광장에 자물쇠를 채우려는 무모한 시도를 꾸준히 시도했다는 얘기다. 동네 우물은 열어 두되 우물터에서 나누는 얘기는 막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짓을 해온 것이다.

그 쯤 되면 민심은 알아서 입을 다물기 시작한다. 정부는 그런 민심의 위축을 즐긴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위축된 민심이 설마 여론조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이라면 기억할만한 경험들이 많다.

젊은 네티즌들이 들으면 화를 낼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상의 대화와 토론은 대중적인 술자리에서 격의 없이 나누는 논쟁과 유사한 점이 많다. 즉, 그 인터넷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박정희 정권 후기의 소위 ‘막걸리 반공법’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인터넷 상의 글 몇 줄에 검찰조사까지 받는 모습을 보며 막걸리 잔 나누며 정부 비판 좀 했다고 반공법으로 형을 살고 나온 이들이 적잖았던 시절에 나온 단어인 막걸리 반공법이 되살아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젊은 세대가 인터넷 정보 의존도가 높은 데 비해 막걸리 반공법 시대를 경험한 나이 든 세대들은 여전히 공중파 방송과 신문에서 주로 뉴스를 구한다. 따라서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불러올 다른 여러 파장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출 시간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떤 계절인지를 읽을 경험은 있다. 그런 그들은 스스로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그리고 분노한 젊은이들과 같은 골을 따라 가며 강물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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