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현대그룹, '출구가 없다'
벼랑 끝 현대그룹, '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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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흑자에도 결국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대북사업재개는 절망적,주거래은행 변경도 어려워
유동성위기 지속되는 한 현대건설 인수는 불가능

 [서울파이낸스 정일환 기자] 요즘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한 마디로 '죽을 맛'이다.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이 될 정도로 그룹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간 호사가들 사이에서 현대그룹이 돈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은 꾸준히 회자됐지만, 사실 재계의 반응은 '설마'였다. 현대그룹도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라는 단어가 거론될 때마다 발끈하며 손사래를 쳤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해운업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지난 1분기 흑자를 냈다는 소식도 '설마'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결국 현대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대상에 포함되고 말았다.
앞날은 더 어둡다. 그룹의 상징인 대북사업은 이제 중단 됐다기보다는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대북사업이 언제 재개될지는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여기 저기 물이 새는 현대호(號)를 이끄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회장직에 오른 뒤 지금까지 여러 사업에 대해 수차례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진퇴양난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됐다.

우선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은 현 회장에게 큰 짐이 될 것이 뻔하다. 그룹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도 단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정은 회장이 누차 의지를 표명해왔던 현대건설 인수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는 이상, 현대건설 인수는커녕 오히려 돈 될 만한 것은 팔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취임 이래 최대 위기'라는 진단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누군가 현 회장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현대그룹의 경영권과 직결되는 시나리오다. 음모론이 깔고 있는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현대그룹 측은 '억울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대북사업과 관련한 현대아산의 매출은 그룹 전체 매출에 1% 정도밖에 안 된다.

또 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는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해 손실을 최소화했고 더욱이 올 1분기에는 흑자로 돌아섰음에도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에 선정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다 채권단 측이 체결 대상 선정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도 불만이다.

현대그룹은 “주거래은행을 변경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외환은행 측은 물론 시장도 “능력 있으면 해보라”며 냉랭한 시선을 보낸다.
금융권의 한 전문가는 “주거래은행은 바꿀 수 있겠지만 문제는 주채무계열”이라며 “대상으로 선정된 이상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지난 19일 “현대건설을 다음 달 시장에 매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계는 시기와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 아니라 6월쯤 대우건설 매각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채권단과 현대건설 매각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대그룹 입장에서 유 사장의 발언은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밖에 없다.

현대그룹 측은 여전히 현대건설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면 현대건설을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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