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공사 위에 선 정치
토목공사 위에 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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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둔 도심 곳곳에서는 각종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교통체증의 또다른 원인이될만큼 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공사가 벌어지는 이런 일이 물론 이번 선거에서만 유난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현 정부들어 중앙정부건 지자체건 모두가 유달리 크고 작은 토목공사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 또한 지울 수 없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 중에는 한반도 대운하 논란으로 시작돼 숱한 반대를 뚫고 결국 정부가 밀어부친 끝에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낙착된 전국규모 토목공사가 현 정부의 인상을 결정짓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대개의 경우 선거철이 되면 밀어뒀던 각종 민원이며 현안들이 일사천리로 처리되면서 현직 지자체 단체장의 일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도모한다. 문제는 이런 단순한 민심얻기 차원의 정치목적적 일 벌이기라도 그렇게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근래 공사현장도 많이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대중은 경험을 더 믿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토목공사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떡고물을 안겨줬는지를 경험한 대중들에게 있어서 때마다 여기저기 들쑤셔 파헤치고 괴상한 건조물들을 길거리에 늘어세우는 전시행정이 어떻게 보일지는 뻔하다.

예전 일이기는 하지만 대형건설업체 현장소장이 자랑스레 늘어놓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대형 수주를 따내면 남들은 50%를 먹는데 나는 30%만 먹기 때문에 뒷탈이 날 일이 없다”고 스스로가 양심가인양 하던 그는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자신이 엘리트임을 확신하던 젊은이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때보다 얼마나 투명한 사회가 됐을지 수치로 대비해 볼 자신은 없다. 분명 그때보다는 여러 면에서 좀 더 투명한 사회가 됐다고 믿지만 과연 투명하기만 한 사회일까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들이 그 필요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산스러운 토목공사 붐을 바라보는 심정은 시쳇말로 껄적지근하다.

물론 같은 공사를 바라보는 이들도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하천 정비사업에 각종 건조물과 조형물들이 포함돼 있다. 그걸 보면서 하천변 아파트 주인들은 아파트의 가치상승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반면 살림이 나날이 궁핍해져가는 많은 수의 서민들은 혈세를 제멋대로 낭비한다고 투덜댄다. “낭비하는 게 제 돈인가. 그저 멋대로 쓰는구먼”하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지 않다.

일단 하천정비사업이 여기저기서 지자체의 인기를 끌며 벌어지는 이유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중 최대 실적이라는 청계천 공사가 크게 작용했을 성 싶다. 청계천의 실제 효용성 문제는 차치하고 일단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사실이라 공사 시작 전에는 몰라도 일단 완공되고 나서는 누가 특별히 시비 걸 일도 적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막대한 서울시의 홍보예산이 투입됐으리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자체 장들로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롤모델이 된 셈이다.

토목공사는 현정부가 뉴딜정책의 핵심으로 본받고 싶어한 주제다.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한국 땅에서 뉴딜정책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파편적 인식이 심어진 것은 박정희 정권의 계획경제가 이론적 토대를 삼으면서부터 시작된 일로 경제학자들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이유야 어떻든 토목공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문명의 흔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집권자들로서는 그런 문명의 랜드마크를 당대에 남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치인치고 누구라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런 욕망이 역사의 긴 호흡과 더불어 당대의 민심과 시대적 수요에 얼마나 합치하느냐 여부에 따라 훗날의 평가가 거꾸로 갈 수도 있음을 종종 잊는다는 점이다. 대개의 역사적 기념물들은 당시 어떻게 노동력을 동원하고 활용했는지 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잘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화성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과정에서는 노동자를 어떻게 사람 대접했는지가 드러난다. 절대왕권마저 노동자들의 민심을 중히 여기니 반대의 소리도 누그러졌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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