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가 ‘봉’되는 까닭?
한국 소비자가 ‘봉’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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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4월6일 ‘드디어’ 한국에 판매된 자사 제품에 대해서도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지난해 10월 5일부터 실시된 리콜이 한국 땅에까지 상륙하는 데 무려 반년이 걸린 것이다.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

이유는 안팎에 모두 있었다. 도요타가 한국에서의 리콜을 발표하고 나니 뒤늦게 일부 한국 언론에서 ‘차별’을 들고 나오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 돌아다니며 눈물의 사죄를 한 도요타가 반년을 잠잠하도록 한국 정부도, 소비자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 변호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발등에 불 떨어진 도요타가 ‘조용한 나라’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은 것은 그럴 법해 보인다. 우리 속담에도 “우는 아기 젖 한 모금 더 물린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그나마 반년 지나서라도 도요타가 한국에서 리콜을 실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내 차량은 문제없다”던 한국 정부, 구체적으로는 국토해양부가 국내 차량에 대한 조사에서 결함이 발견됐다고 통보한 이후였다.

그러면서도 ‘예방책으로 실시하는 자발적 리콜’이라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선처’해준다는 식의 발언이니 참으로 뻔뻔하고 몰염치한 짓이다. 저들이 한국 정부나 소비자들을 ‘봉’으로 보지 않고서야 저런 뻔뻔한 소리를 멋대로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연이은 차량결함에 의한 치명적 사고 소식에 그토록 시끌벅적하던 사이에 잠잠한 수준을 넘어 ‘문제없다’고 도요타를 비호하는 발언을 쏟아낸 한국 정부나 그 틈에도 말썽난 도요타 차량을 1만여 대나 구입한 소비자가 제대로 대접받는다면 그게 오히려 ‘반자본주의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번 리콜대상 도요타 차량은 2005년부터 올해 1월까지 생산된 총 1만2,984대라고 한다.

그러니 구미 국가에서는 ‘사죄’를 하고 우리 앞에서는 ‘선처’라고 당당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만 국한된 일일까.

내 돈 내고 사서 쓰는 외국산 제품들에도 생산자 눈치나 보는 이 비굴함은 실상 역대 정부가 앞장서서 시범을 보여 온 것이나 진배없다. 말썽 많은 미국산 F-15 전투기가 미국내에서도 사고를 일으켰지만 한국 정부는 역시 ‘문제없다’고 앞질러 발표하고 머잖아 국내 영공에서 사고를 일으켜 많지도 않은 엘리트 전투기 조종사 목숨 여럿을 사라지게 했다.

국민들이 못 믿겠다고 아우성치는 외국산 제품은 번번이 한국 정부가 ‘문제없다’고 오지랖 넓게 방어해주고 소비를 조장 내지는 강요해왔다. 그런 일이 너무 비일비재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수구세력의 비호를 업고 막무가내로 수입을 허용했다. 결과는 개개인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체급식 등에 대량 소비된다는 의혹만 여전히 꼬리를 문채 일반 소비자들의 선택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일반 국민 여론과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 행동이 종종 외교의 지렛대 구실을 하듯 국내 소비자 여론은 통상협상의 창이요 방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런 민심을 억누르는 데서 더 나아가 올바른 정보를 차단하며 상대국 업체들의 입장을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이번 도요타 사건의 경우는 그런 정부의 주된 지지 세력일 듯싶은 부유층들이 정부를 너무 믿어서인지, 혹은 정부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뒷받침하려는 충정 때문인지 말썽 난 차량 구입에 나서는 데 별반 주저함이 보이질 않은 듯하다. 치명적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도. 2002년 이후 미국에서만 2,000건이 넘는 급가속 신고를 받고, 그로 인해 최소한 815건의 충돌사고가 났고 19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도요타 차량을 주저 없이 산 한국 소비자들의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국내 기업이건 해외 기업이건 소비자가 침묵하는 한 그들은 제품의 안전성에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이 침묵하면 정치가가 국민을 얕잡아 보듯 기업도 침묵하는 소비자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소비자의 침묵이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 혹은 비굴함 때문이라는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그런 정부를 만든 국민 역시 책임에서 전적으로 자유롭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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