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모르는 문화 수장의 '굴욕'
'유머' 모르는 문화 수장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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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초반에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홀로 겁 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즈음엔 정부 중심부로 집속탄이라도 떨어진 듯 외곽까지 폭넓게 여기저기서 겁 없는 발언, 막무가내식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요미우리신문이 해도 한참 넘긴 2008년 대통령의 독도발언 문제를 끄집어내 사실공방에 불이 붙은 마당인데 이번엔 신동아에 실린 김우룡 방송문화진응원 이사장 인터뷰 기사의 후폭풍이 크다. ‘김재철 MBC 신임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까였다’는 발언이 인터넷을 달구는 중심이지만 그밖에도 듣는 이 귀가 번쩍 뜨일 기밀사항(?)들을 줄줄이 털어놨다. ‘MBC 내의 좌파를 척결했다’ ‘엄기영 사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았으면 해임했을 것이다’ 등 참으로 많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정부`여당의 MBC 장악 과정에서의 무용담을 신나게 털어놓은 모양이다.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도 평소 겁 없는 발언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편이지만 이번에는 겁 없는 네티즌들의 유머에 심기가 몹시 상한 모양이다. 김연아 선수에게 화환을 걸어주고는 다른 금메달리스트에게도 했듯이 김 선수를 포옹하려 한 모양인데 김 선수의 살짝 드러난 거절의 표정과 그로 인해 물러난 유 장관의 모습이 그만 한 네티즌의 동영상에 잡혔다.

이 동영상은 ‘유인촌 굴욕, 연아 포옹 회피’라는 제목이 붙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유장관은 이에 발끈해 동영상을 올린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데 동영상을 봐서는 그럴 사안인지 아리송하다. 오히려 평소에 동영상 찾아 볼 일 없던 필자 같은 이도 무슨 일인가 싶어 뒤져봤으니 이건 일을 되레 키운 꼴이다. 현역 연예인 같으면 관심을 더 끌기 위한 행위로나 볼텐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굴욕’이라는 표현은 실상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볍고 유쾌하게 사용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러니 이번 고소 사건은 젊은 네티즌들에게 유인촌 장관을 ‘유머를 모르는 문화 수장’으로 낙인찍게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이번 고소 사건에 인터넷에서는 “잃을 명예는 있느냐”는 날선 비판도 나오고 있는 판이니 괜히 건드렸다 이미지 손상만 더 커질 듯하다.

그런데 얼핏 봐서는 이런 겁 없는 소리, 막말과 상반된 듯싶으면서도 실상은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 신임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에게서 나왔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중수 신임 한은 총재가 내정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부터 ‘윗선의 점수 따기’에 들어간 인상을 줄 발언을 한 것이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며 한은 총재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는 게 필요하다.”

이 발언은 한은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가뜩이나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등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노골화하는 마당에 이런 발언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한은 총재는 독자적인 판단을 할 일이 거의 없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여과장치는 이제 다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고 사회적 견제 장치는 그런 식으로 하나 둘 거둬지고 있다. 이미 공중파는 물론 광고를 통한 언론 통제가 충분히 가능해진 사회에서 더 이상 진정성 있는 비판을 기대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듯하다.

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는 견제가 있음으로 해서 권력이 독주하지 않고 사회가 부패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견제의 기능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 먹구름이 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견제는 민주주의만의 미덕은 아니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왕이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중에 언로를 차단해서는 안 되며 그를 위해 왕은 훗날 자신에 대한 평가의 근거가 될 사초(史草)를 미리 볼 수 없었다. 태종도, 세종도 당대의 사초 내용을 몹시 궁금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볼 수는 없었다.

조선 26대(순종 포함 27대) 왕 가운데 사초를 미리 본 왕은 연산군 뿐이다. 그리고 그는 끝내 ‘폭군’으로 쫓겨나 ‘실록’에는 실리지도 못하고 ‘연산군일기’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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