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의 역사성
세종시 문제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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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문제가 여전히 시끄럽다.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을 극력 반대한 한나라당과의 타협안으로 마련됐던 세종시 원안마저 현 정부 들어 새로이 수정안이 나오면서 작금의 여러 논란이 증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충청권 민심을 그렇다 쳐도 정치권이 여`야 갈등에서 여`여 갈등으로 번져가며 좀처럼 진화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이 지금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등이 왕경을 몇 차례씩 옮긴 예가 있지만 고려가 건국한 이 후로 수도가 옮겨진 일은 이성계 일파에 의한 역성혁명이 성공한 직후 한 번 있었을 뿐이다. 그 때 건설된 수도가 지금의 서울인 것은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아는 일이다.

역사상으로 보자면 왕조가 지속되는 중에 천도가 계획되거나 추진된 예가 고려에서 한 번, 조선에서 한 번씩 있었다. 묘청의 난으로 기록이 남은 고려 인종 때의 서경 천도 움직임과 정조의 수원 화성 건설과 천도 의지였다.

물론 그 두 번의 천도 추진은 모두 실패했다. 그 두 번의 천도 추진이 실패한 이후 각각의 왕조는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역사적 배경은 각기 달랐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급변하는 대외 정세에 대해 눈감고 귀 막은 기득권 세력들의 죽기 살기 식의 반대 또한 같았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서경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추진세력들이 대거 제거된 뒤에 저술된 삼국사기는 그래서 훌륭한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한 의구심을 남기고 있다. 유교적 사대를 미덕으로 여긴 김부식 일당이 서경천도 세력의 이념적 유연성에 반역의 족쇄를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서를 저술함에 있어 공자의 춘추필법으로 저술된 중국사를 저본으로 유교적 가치를 고양할 의도를 바탕에 깔고 저술한 의혹을 면키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부식의 삼국사기 저술은 왕명의 허울을 썼다 하더라도, 왕조에의 충성으로 포장을 했다 하더라도 역사에의 반역이라는 평가를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 비극적 반역의 역사는 소위 유교=사대주의라는 등식으로 조선왕조에 고스란히 이전됐다.

노론 사대부가 왕권을 농단하던 시절에 힘겹게 왕위에 오른 정조 역시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여전히 유교적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문체반정을 일으켜 자신이 아끼는 젊고 유능한 학자들의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이나 재기발랄한 문체마저 억압해야 했고 망해 사라진지 오래인 명나라를 위한 제사를 직접 주재하면서 반대세력을 다스려 가야만 했던 것이다.

화성을 건설함에도 천도라는 표현은 입 밖에도 내지 않은 채 오로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아들로서의 ‘효’를 내세워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화성 건설의 명분을 얻기 위한 정조의 고투는 실록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러 기록이나 야사에서도 채증이 가능할 만하다. 그만큼 정조의 화성 건설 및 장기적인 천도 준비는 왕권을 건 싸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천도 실패 이후 대체로 국운이 기울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천도는 대개 고려의 귀족, 조선의 사대부 등 기득권 세력들이 왕권을 뛰어넘는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기운을 일으키고자 시도되지만 또한 그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인해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지상과 묘청이 추진하던 서경천도가 실패한 후 고려는 무신의 난과 그 뒤를 이은 원나라의 침입으로 황제국의 지위를 잃고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한다. 물론 징기스칸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명맥이나마 유지한 국가는 고려가 유일했으니 그만도 대단한 일이다.

화성 천도를 계획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정조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에 의문이 끊임없이 일었고 ‘독살설’이 요즘도 심심찮은 얘깃거리로 서점가에 나돌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 들은 얘기로는 목 뒤에 난 종기를 의관이 거꾸로 처치해 죽었다고도 했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끝난 조선의 개혁은 결국 외세에 의한 왕조의 멸망과 아울러 역사상 전무후무한 식민지 시대를 역사에 남겼다. 블랙홀처럼 모든 권력을 빨아들이는 기득권 세력이 결국 스스로 화석화함으로써 하나의 시대는 비극적으로 마감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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