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 당국규제에 '복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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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정부와 '코드맞추기' 행보
신한·하나, 후계 양성 등 '눈치보기'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연초부터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복지부동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각종 규제가 주된 원인이지만, KB금융 사태가 금융권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일부 국책은행과 외국계은행을 제외한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에 대해 금융당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특히 지난해말을 전후로 감독당국의 고강도 종합검사를 받은 KB금융·국민은행은 수개월째 업무마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KB금융이 연초 외환은행 인수는 물론 KB카드 분사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황영기 전 회장의 사임에 이어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자직 사퇴로 이어지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에서는 새로 취임하게될 KB금융 회장의 성향에 따라 지난해 강 행장이 계획했던 핵심사안이 다시 원점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KB금융 회장 후보에 정부측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KB금융 경영진의 의지와 관계없는 'KB+우리 합병설'이 나오고 있는 것은 KB금융의 리더십 공백사태를 이용한 정부의 의도된 시나리오로 보인다"며 "결국 금융당국이 강 행장을 CEO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현재 '선장'이 없는 KB금융 내부에서는 사실상 금융당국이 CEO역할을 대행하고 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말 KB금융 회장 선출과정에서 당국과 마찰을 겪었던 조담 이사회 의장과 일부 사외이사들의 사퇴를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KB금융 사외이사들이다.

KB금융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사외이사모범규준에 적극 부응하고 선도금융그룹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고자 조담 이사회의장에게 이사직 사임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금융권 처음으로 사외이사후보인선자문단을 구성하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참여를 요청한 것도 정부와 '코드맞추기' 행보로 해석된다.

여타 시중은행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주주총회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주사 회장과 사외이사 의장의 겸임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일단 '지주사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토록 명시하고 있는 정관만 변경한다는 게 내부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라응찬 시한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등 국내 금융지주사의 1인지배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주문한 '경영진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놓고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신한지주의 경우 라 회장의 연임 여부가 최대 핵심사안인 만큼 엎친데 덮친격이 아닐 수 없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후계자양성 프로그램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금융사 CEO의 경우 오너가 있는 국내 대기업과 다른 사정이 있다"며 "사외이사 모범규준처럼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구체적인 규준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실행에 나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예금보험공사의 견제를 받고 있는데다, 과거 정부의 입김에 따라 수시로 CEO가 교체돼 온 까닭에 금융당국의 규제에 한발 비켜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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