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厚顔無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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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사를 위해 IOC 전 위원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특별사면 한다고 정부가 발표한지 열흘 만에 사면된 이건희 전 회장은 보기 좋게 정부의 뺨을 쳤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 대해서는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면서 “국민, 정부 다 힘을 합쳐서 한 쪽을 보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그러면서 “솔직히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전 회장이 사면되지 않으면 평창 올림픽 유치는 물 건너갈 것처럼 여기게 만든 정부와 언론은 결국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그가 '멍에'를 벗도록 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족쇄가 풀리자마자 그 짐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되 안겼다. 그러니 이건 정부는 물론 대통령이 한 방 맞은 꼴이 됐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올해 생일은 여러 면에서 참 특별했다. 특별사면 된 지 열흘 만에 맞은 본인과 가족, 그리고 그룹의 심사가 특별했으리라는 것은 그저 구경꾼의 지레짐작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 생일에 모든 사람들에게 제왕으로서 자신을 각인시킬만한 특별한 이벤트를 연출했다.

사면되자마자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로 해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0에 온 가족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부인 홍라희씨와 두 딸 신라호텔 및 에버랜드 이부전 전무, 제일모직 및 제일기획 이서현 전무, 그리고 아들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

여기서 그는 특히 두 딸을 양손에 잡고 기자들 앞에 세우며 “우리 딸들 홍보 좀 해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아직 어린애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경영자로서 입지를 굳혔다고도 볼 수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몇 걸음 뒤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뒤따랐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듣기에 자식들 경영수업을 위해 자신이 전면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만 하다. 더욱이 삼성의 국내외 경쟁업체 전시장들을 돌면서는 수행원으로 따라나선 삼성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다양한 주문을 쏟아냄으로써 자신이 실질적 오너임을 분명히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경영복귀가 “아직 멀었다”고 답했으나 이는 경영복귀를 반드시 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수사일 뿐이다. 평소 철저히 계산된 발언만 하는 그답게 단 몇 마디 속에 그는 자신의 의지와 앞으로의 행보를 누구나가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도록 포석을 깔았다

그는 비록 사면된 지 열흘 남짓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권좌의 주인, 제왕임을 선포했고 또 외아들인 이재용 부사장뿐만 아니라 두 딸을 포함한 모든 자식들에게 3세 경영수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힌 셈이다.

뿐만 아니다. 세 자녀 외에 이학수 전 그룹 부회장 겸 전략기획실장이 유일하게 현직 임원이 아닌 수행원으로 그를 따랐다. 이학수 전 부회장인 수행원에 포함된 사실은 그 어떤 말이나 징후보다 명백하게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그룹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를 확정적으로 공표하는 행위였다.

아직 집행유예 중인 이학수 전 부회장을 대동했다는 것은 이건희 체제하의 그룹 2인자로서 그의 입지를 재확인시키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수행 사실은 보도통제됐다. 하지만 이미 지난달 15일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이 사실상 확정된 단계에서 열린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발족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이 과거 이학수 전 부회장의 전략기획실 부활이라는 해석도 나왔던 만큼 보도통제는 아직 집행유예중인 그의 신분에 기인한 단속조치로 보인다.

어떻든 그는 사면되자마자 삽시간에 지난 5년을 무위로 돌리며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삼성체제로의 환원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 세 자녀 간에는 치열한 후계 경쟁을 촉발시키며 3세 경영체제로의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고 기업 내에는 저마다 예비 후계자들을 향한 충성경쟁을 이끌어내면서 관심을 딴데 돌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의 곁에는 영원한 2인자로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바칠 만한 뛰어난 책사를 두었다. 그의 아버지 고 이병철 전 회장처럼.

반성은 눈을 씻고 봐도 기미조차 안 보인다. 오히려 “모든 분야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전국민을 향해 훈계한다. 당당하다 해야 할지, 뻔뻔하다 해야 할지 모를 그의 이런 후안무치한 행위는 아마도 전 재산 39만원 밖에 없다던 전두환 전 대통령 이래 최강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말은 신뢰를 잃고 최고의 재벌은 염치를 잃은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할까.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미래는 길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 될까 싶어 걱정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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