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스산한 사람들
연말이 스산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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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들어서자마자 울리곤 하던 길거리 캐럴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상가에서는 아무래도 장식이며 음악이 연말 분위기를 돋워야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스산하기만 한 다수 대중들에게는 흥겨운 캐럴이 짜증을 유발하지 않으면 다행인 분위기다.

정부가 실업률 해소 차원에서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청년인턴제는 이미 첫해 실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드러났다. 회사가 공채로 신입사원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뽑아 훈련시킨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 정책에 맞춰 받은 청년인턴들은 모조리 집으로 돌아갔다.

이력서에도 보탬이 안 되는 임시직으로 젊은 시절을 취업준비도 못한 채 허비했다는 불만들만 터져 나온다. 애초에 청년인턴을 받으면서 정규직으로 받을 계획 같은 것은 전혀 없던 기업들이 그들을 받아줄리 만무하고 그 회사에 시험을 본다고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니니 시간낭비였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은 단지 정부 홍보를 위해 이용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래도 정부는 꿋꿋이 내년에도 규모를 절반 줄여 5천명의 청년인턴을 채용할 것이라고 한다. 10개월 일하고도 취업에 따른 각종 보험료를 냈지만 실업급여도 못 받거나 받았다가 노동부 통지로 다시 토해내게 생긴 청년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달콤한 전망을 내놓지만 이미 한두 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이만 쌓인 젊은이들은 어찌할 것인지 대책이 없다. 게다가 지금 공단에서는 임금 삭감 차원에서 기존 임시직들을 내보내고 더 싼 임금에 신입 임시직을 뽑는다는 소리도 들린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임시방편적 정책으로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기업들 역시 그런 정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신입’을 뽑고 인건비는 줄여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장년층 대부분이 또 길거리로 내몰린다.

직장생활 한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을 장년층들은 새해를 맞을 설렘보다 심난함이 압도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패기도 없어진 채 삶의 무게만 훨씬 무거워져 버린 장년층의 실업은 정부의 관심 밖에 있다. 그들의 비명에는 공권력이 답으로 되돌아간다.

국가경제가 성장을 하건 말건 나날이 빈곤층은 늘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복지 예산은 잔인하리만치 삭감되는 추세다. 몸을 팔아서라도 생존하려는 신 노예가 양산될 준비가 갖춰져 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여력이 줄어든 서민들은 외면한 채 수출로 살길을 찾자고 외치지만 해외 시장 역시 썰렁하다. 기업들은 되지도 않을 수출에 힘을 쏟는 대신 투기의 길에 더 자주 기웃거린다. 그러다 기업이 휘청거리는 사태도 간혹 생겼다.

이제까지는 어쩌다 실패한 투자로 간주됐겠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실패 사례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미국 발 금융위기도 시작됐지 않은가. 더욱이 땀 흘리지 않고 기업을 물려받은 2세, 3세 경영인들의 오만과 독선이 어떤 피해를 낳을지 알 수 없다.

투기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투기자금이 안을 리스크야 당사자 책임으로 끝나지만 그에게 채용된 수많은 노동자들은 앉아서 날벼락 쓰는 일도 생길 수밖에 없다. 멀쩡한 기업이 투기에 나서는 데야 노동자들이 일일이 알 수 있고 간섭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안 갖춰졌으니

막을 방법도 없다. 노조는 임금문제만 기업과 협상하라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제동을 걸 그 무엇도 안 남는다.

그보다 더 심각한 투기의 후유증은 거대자본이 블랙홀이 되어 힘없는 서민들의 돈을 계속 빨아들이며 더 많은 빈곤계층을 양산해 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투기가 됐든 사회 전체로 볼 때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다.

과거 부동산 투기 열풍이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것은 웬만한 이들에게는 상식이다. 투기억제 정책들을 풀라고 압박을 넣고 있는 현 집권여당이나 거의 투기 자율화 수준의 정책을 자주 들었다 놨다 하는 현 정부 실세들에게는 물론 상식이 아닐 테지만.

문제는 이대로 가면 세계 경제가 어디로 가건 말건 내년 연말이 올해보다 더 스산해질 것 같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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