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화된 상식의 위험성
화석화된 상식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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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언제든 자신들은 상식에 맞고 상대는 상식을 벗어났다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그런 충돌을 바라보는 이들도 서로 다른 상식의 어느 한편을 지지한다.

이런 갈등과 충돌이 가장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곳은 전장이다. 정치도 서로 다른 상식이 완고해지면 종종 전장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대중들은 종종 그런 충돌에 염증을 느낀다. 그 책임은 물론 상대편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현재 한국의 정치로 옮겨놓고 이런 상식의 충돌에 대응하는 대중의 판단 요인을 보면 상식이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충돌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에게는 상식으로 포장한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 모두가 그런 이해의 직접적 당사자는 아니다.

불과 30여 년 전 국내에 처음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몇 년 간은 고속도로가 지나는 농촌 지역민들에게 고속도로는 편리함의 상징이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도로였다. 교통사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이유조차 없이 한가하던 농촌지역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교통사고 사망자를 내는 사례가 적잖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통과지역 주민들에게는 고속도로가 주는 직접적 이익을 실감할 그 무엇도 없었다. 다만 늘 지나다니던 길이 사라지고 한동네로 소통하고 지내던 지역이 두 쪽 나 소통을 막히게 만든 장애물이었을 뿐이다.

그런 장애물이 된 고속도로는 초기에는 대부분 텅 비어있기 마련이었다. 명절 때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현재의 고속도로 교통량을 생각하면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추억이다.

그런 한가한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한 이유는 단순했다. 10리 안팎의 가깝게 지내던 동네들끼리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아래로 뚫린 충분치 않은 터널을 찾아

빙 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텅 빈 도로를 두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기에는 고속도로의 위험을 몰랐던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다가 차에 치이는 사건들이 발생한 것이다.

한가한 걸음으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넘어 다니던 농촌 주민들로서는 고속도로 규정 속도인 시속 60~100km로 달리는 차의 속도에 대한 가늠이 부족했다. 물론 그 도로를 누구나가 규정 속도를 지켜 다녔으리라 믿기도 어렵지만 저 멀리서 차가 보이니 소걸음에 맞춰 느긋하게 가더라도 차가 오기 전에 충분히 다 건너 갈 것이라는 판단을 하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라는 진단이 당시에도 나왔다.

소걸음에 맞춰 느긋하게 걷던 농촌주민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상식이 여지없이 충돌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식이 낡은 상식을 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늘 새로운 상식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낡은 상식을 붙들고 있는 이들이 다수이면서 사회적 파워를 갖고 있다면 새로운 상식은 진정한 대중적 상식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종국에는 새로운 상식이 보편적 상식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상식을 마주하면 낡은 상식으로 방어하는 입장이 된다.

한국사회는 지금 그런 상식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낡은 것들은 차츰 밀려난다. 그러나 한때는 낡았던 상식이 다시 새로운 상식으로 도전해 오기도 한다. 비록 밀려오는 파도가 밀리고 쓸리기를 반복하며 해변에 이르듯 일거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지만 파도는 매일 반복해서 밀물 때와 썰물 때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도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경향은 ‘권위’를 가진 이들에게서 더 자심하다.

이즈음의 경제학은 과연 그들의 학문적 상식으로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가. 권위 있는 학자`전문가들이 내놓는 희망적 전망들은 과연 믿어도 될까. 그들이 신봉해온 학설을 붙들고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세계 경제의 진정한 위협 요소는 끝없는 자본의 욕망을 제어할 시스템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권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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