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이사회 논란과 강 행장의 '속앓이'
KB 이사회 논란과 강 행장의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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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국내 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정점을 지나 안정세를 되찾으면서 국내 주요 시중은행장들 역시 한시름 놓은 형국이다. 그러나 유독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속앓이는 과거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2년간 강 행장 특유의 보수적 성향이 금융위기에서 빛을 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KB금융 회장 인선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 강 행장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이다.

강 행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뒤 불과 5분여만에 자리를 떠났다. 이날 간담회는 강 행장의 KB금융지주 회장 내정 직후 계획됐다는 점에서 시장 안팎의 관심이 쏠린 터였다. KB금융이 내년 금융시장의 시장재편을 주도할 금융사라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최근 불거진 KB금융 사외이사제도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강 행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행장은 모친의 위중한 병세를 이유로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일부에서는 '한두개 질문에 대한 답변만이라도'를 외치기도 했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말만 남기고 성급히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이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곤란한 질문이 쏟아질 것을 염두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강 행장의 회장 입성을 축하하는 자리로 기획됐는데, 오히려 강 행장을 추궁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과 관련된 일은 어떤 일보다 우선한다'는 사회적 통념에선지 간담회 이후 이와 관련된 뒷말이 나오진 않았다. 간담회를 대신한 최인규 부사장의 적극적인 해명도 한몫을 했다. 사실 강 행장은 지난 9월 부친상을 치루기도 했다. 강 행장 개인으로서도 무척이나 힘든 한해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강 행장이 이날 간담회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고 했다면 그에게 무리수를 두게끔 한 원인은 무엇일까? 자신을 지지해준 이사회에 대한 의리, 그리고 무엇보다 '찍히면 죽는다'는 관치금융에 대한 두려임(?) 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강 행장의 회장 선임 직후 시장 일각에서는 '강정원 검찰수사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번 회장 인선과정에 불만을 표해온 금융당국이 어떤식으로든 '강정원 죽이기'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에 기인한 시나리오인 셈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고 강 행장의 회장 입성이 좌초될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을 제기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금융당국의 압력에 의해 KB금융 회장직에서 물러난 황영기 전 회장의 사례도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사실 이번 KB금융 이사회 논란은 어떻게 보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쇼'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KB금융 이사회와 강 행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KB금융 이사회가 최종 후보로 선정했던 관료출신 인사 두명이 잇따라 후보직에서 사퇴한 데다 후보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철휘 캠코 사장은 "회장선거가 초등학생 반장선거냐"는 말까지 서슴치 않으며 KB금융 이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심지어 공기업 임원 선임절차로 바꿔 다시 경쟁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실상 강 행장이 단독 후보가 되면서 회장선임의 연기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결국 이사회는 강 행장에 대한 단독 인터뷰를 강행, 결국 회장으로 내정했다. 이후 여론은 은행 이사회제도에 대한 각종 문제점을 거론하기 시작했으며, 금융당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사회 제도에 대해 대대적인 메스를 가할 뜻을 내비쳤다.

KB금융 뿐 아니라 이른바 '황제경영'으로 불리는 하나·신한금융지주 등의 이사회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과 은행 임직원들은 금융당국의 이같은 제재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의 의사결정구도에 정부가 나서 메스를 가한다는 것 자체가 '관치금융으로의 회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B금융 이사회의 경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며 권력기구화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여타 금융사와 비교해 정부의 입김에서 철저히 독립돼 있다는 장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정 CEO를 둘러싸고 파벌이 형성됐다는 비판 역시 내외부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으며, 이사회와 경영진의 보수 문제 역시 관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메스를 댄다고 은행 이사회가 이상적인 집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단적인 예로 우리금융지주만 보더라도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의 지배구조 하에 있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외부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은행으로 판명났다. 관치금융의 폐혜가 금융사의 경쟁력마저 갉아먹었다는 반증이다. KB금융(국민은행)의 경우 오히려 보수적인 영업에 집중하면서 여타 금융사 대비 양호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관점에서 '황제경영'으로 치부시 되는 신한·하나금융지주 역시 우리금융보다 양호한 경영성과를 보여줬다.

KB금융 이사회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고도 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삼성과 LG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성장 배경에 '관치'라는 요소가 필요했었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금융당국을 상대로 '화해의 제스처'가 아닌 '쓴소리'를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는 '존경받는 CEO'가 출현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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