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자충수(自充手)
금융감독원의 자충수(自充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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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금융당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온갖 은행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시중은행장까지 직접 고르겠다고 나서며 관치금융 논란에 군불을 때고 있다. 자유경쟁시장 하에서 '관치금융'은 그 자체로 금기시 돼야 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이 직접 나서 이같은 논란에 불을 지피는 것을 보면 또다른 꼼수가 있는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이같은 논란을 통해 '금융사 길들이기'는 물론 빠르면 내년초 구체화될 수 있는 금융감독체계 개편문제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논란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위기 이후 금융감독 과제' 보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은행업 감독규정을 개정해 은행장과 감사 등 임원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금융지주사 임원 후보를 주주총회 상정 이전에 금감원에 보고토록 의무화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중대한 결격사유만 나열하고 있는 현행 감독규정만으로는 '부적절한 인물'을 가려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시중은행의 인사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 감독당국이라고 할지라도 인물에 대한 청렴성을 객관적으로 가려낼 재간은 없다. 철저히 보수적인 성향의 감독당국으로서는 전문성에 대한 판단기준도 '리스크관리 능력'으로 치우칠수밖에 없어 시장의 경쟁과 자율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당국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말 잘듣는 인사'들로 시중은행의 요직이 채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 원장이 이른바 '황영기 신드롬'에 집착한 나머지 '자충수(自充手)'를 두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과거 우리금융 재직 시절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를 주도해 거액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금융계를 떠났으며, 이후에는 감독당국과의 책임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김 원장은 황 회장 퇴임 이후에도 공식석상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황 회장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황 회장에 대한 당국의 불신을 표출해 왔다. 어떤 식으로든 금융계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황 회장으로서는 사실상의 '확인사살'과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치가 영국의 금융감독청(FSA)의 선진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 체력마저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 선진 감독기법을 도입한들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관치금융이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금융당국에게 선진감독 기법 도입은  '○○ 목에 진주목걸이'와 다를게 없다는 비판적 시각도 감지된다. 금감원 퇴직자들이 민간 금융사 감사 자리 싹쓸이 하고 있는 행태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국내 금융감독체계의 후진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금감원은 이같은 '낙하산 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사선임시 공모제 도입 등의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역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형국'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집안 단속이 우선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다. 선진제도 도입보다 시급한 것은 뼛속부터 달라지고자 하는 금융감독당국의 개혁 노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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