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간 상품 `베끼기'..한달만에 뚝딱
은행간 상품 `베끼기'..한달만에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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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이 선보인 `369 정기예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초 하나은행이 내놓은 이 상품은 369게임이 연상되는 친숙한 이름과 중도해지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구조로 인해 출시 두 달 만에 2조 원가량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상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번 주 중 `3개월 징검다리 정기예금'을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만기가 1년이지만 3, 6, 9월에 중도해지하더라도 기간별로 정상 이율을 주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의 369 정기예금과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구조다.

한국씨티은행도 지난달 19일 3개월마다 이자율이 상승하는 비슷한 개념의 `스텝업 예금'을 내놓았다.

비슷한 상품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은행들이 신상품 개발보다 상품 베끼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국내 영업 풍토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의 기회를 막고 은행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 은행이 신상품을 내놓으면 최소한 5~6개월 지나서 다른 은행들이 유사한 상품을 내놨지만, 요즘에는 한두 달 만에 뒤따라 내놓는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화표시 양도성예금증서(CD)를 출시했다. 당시 김정태 하나은행장이 `원화 CD는 있는데, 왜 외화표시 CD는 없을까'라며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신상품으로 연결됐다는 후문이다. 곧이어 외환은행이 외화 CD를 출시했고 몇 개월 뒤 우리은행도 통장식 외화 CD를 상품 목록에 올렸다.

지난해 초 국민은행은 만 18세 이상부터 만 35세 이하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요구불예금인 `KB스타트 통장'을 개발했다. 예금 잔액이 많을수록 고금리를 주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평균잔액 100만 원까지의 소액 예금에 고금리를 주는 역발상으로 청년층을 공략, 호응을 얻었다.

그러자 신한은행이 얼마 뒤 평균 잔액 중 100만 원까지는 높은 금리를 주고 10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사실상 제로 금리를 주는 `신한 레디고 통장'을 선보였다.

지난해 금리상승기에 앞다퉈 금리 상한 대출을 출시하고,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에 대응해 일제히 스윙계좌 상품(기본계좌와 고금리계좌 간 자동이체)을 선보인 것도 전형적인 `따라 하기'로 꼽힌다.

시중은행 상품 개발 담당자들은 "땀을 흘려 개발한 상품을 다른 은행이 손쉽게 베끼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만 이해는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객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금리이기 때문에 한 은행이 이런저런 구조로 금리를 올린 상품을 내놓으면 좇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고객들은 장기로 자금을 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중도해지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3,6,9 예금'같은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히트 상품이라고 해서 모두 `베끼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SC제일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상품인 `두드림 통장'은 금액에 관계없이 31일 이상 예치하면 3.6%의 고금리를 줘 이 은행이 국내 수신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한국씨티은행이 뒤이어 유사한 내용의 `참 똑똑한 A+ 통장'을 출시해 정면 승부에 나섰지만, 국내 은행들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국내 은행 관계자는 "규모가 적은 외국계 은행의 경우 신규 고객 창출 효과가 더 크겠지만, 이미 많은 고객을 확보한 국내 은행 입장에서는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요구불예금에 고금리를 주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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