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과 한국의 재벌가
워런 버핏과 한국의 재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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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두산그룹 전 회장인 박용오씨가 자살을 했고 미국에서는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이 인생의 최후의 투자가 될지도 모를 모험적 투자에 올인했다. 전혀 관련이 없는 이 두 사건 속에 한국의 부자와 미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코드가 숨어있다.

워런 버핏은 남들이 사양산업이라고 외면하는 철도회사를 인수했다. 경제위기 속에 물동량도 크게 줄어든 철도회사에 올인한 버핏의 선택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에 대한 그의 낙관적 전망이 일단 공식적 투자 이유이지만 그와 동시에 최근 그가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사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왔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철도 역시 현재의 어떤 수송수단보다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해온 의미있는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투자자로서 미래지향적인 투자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부자들에게도 그런 안목이 있었다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렇게 투자처를 못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 호흡을 할 줄 아는 경영인이 그만큼 아쉽다. 가쁜 호흡으로 연명해가는 한국 재벌가의 2세 경영인 자살률이 높다는 점은 그래서 관심사다.

세계적으로 부자들의 자살률이 보통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재벌가의 자살 사건은 주로 재벌 2세들에게서 발생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창업자의 자살 사건으로는 61년에 대한항공의 전신인 KNA를 넘겨줘야 했던 신용욱씨의 자살이 있을 뿐이다. 당시 정치적 압력에 의해 기업을 넘겨야 했던 이들이 화병으로 죽는 경우는 꽤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신씨의 경우는 유일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2세들의 자살은 77년 당시 금호그룹과 함께 호남 2대 재벌이라던 호남전기의 심홍근 회장이 불과 23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이 있었고 이번에 박용오씨가 자살했다. 재벌그룹을 승계한 것은 아니지만 유류판매업으로 탄탄한 재력을 과시했던 아버지의 미륭상사 자산을 토대로 범양상선을 설립, 급속히 성장해가던 박건석 회장의 87년 투신자살 역시 2세 경영인들의 자살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은 STX로 넘어간 범양상선의 박회장 경우 당시에 그의 유명한 유언장과 함께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 재벌가 2세 경영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시 각 언론들은 기업의 어려움, 당사자들이 겪은 모욕감, 배신감 등 여러 상황적 이유들을 열거하곤 했다. 이번 경우 역시 언론의 보도 방향은 대체로 그런 패턴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박건석씨의 경우를 제외하면 심홍근, 정몽헌, 박용오 세사람 모두 가족간 심각한 갈등을 겪고 난 후 오래지 않은 시점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업의 어려움이라면 유독 그들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어서 굳이 재벌 2세 경영인들의 자살을 설명하기에 충분치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재벌의 2세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경영권 승계를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경영인으로 나선다. 그룹마다 나름대로 2세 경영인 체제로의 이양을 위해 경영수업이라는 것을 시키고는 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이미 경영인으로 출발한다. 직급이 무엇으로 시작했느냐는 실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몽헌, 박용오 두 사람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한두 차례의 형제간 분쟁을 치르며 척을 지고 살다 갔다. 심홍근의 경우는 대학도 채 졸업하지 못한 나이에 아버지의 사망에 따라 경영권을 승계했으나 어머니와 분쟁이 벌어졌다.

그런 갈등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부모의 재력 없이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는 재벌 2세들이 단지 그 후광이 줄어든 상황을 만나면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쳐 좌절하지 않겠는가. 파도를 넘으려면 적절히 호흡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팔다리만 저으면 나아갈 것이라 여기는 경영승계 과정이 빚어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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