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목욕을 즐기는 자본
거품 목욕을 즐기는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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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서둘러 경제위기 탈출을 선언하는 상태다. 한국 사회도 진즉 위기 탈출을 예언하며 출구전략을 얘기하고 있다. V자형이니 U자형이니 회복의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권력은 분주하고 자본은 금융 투기를 통한 실적 부풀리기로 권력을 뒷받침한다. 생산과 소비는 늘지 않아도 금융시장이 앞장서서 거품을 키워 가면 정부는 멋진 그래프를 보여줄 수 있고 자본은 더 많은 자본 이득의 기회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와 JP모건이 그런 모델을 극적으로 연출해 보여줬다. 다우지수 10,000포인트를 돌파하게 만든 JP모건의 실적 호조 발표. 3분기에 36억 달러의 순익을 냄으로써 예상보다 실적이 좋았다는 것이다.

소매금융의 부문마다 돌아가며 구멍 난 적자투성이 장부는 누구의 눈에도 들지 않는다. 카드 부문 7억 달러 적자, 줄어들지 않는 대손상각 38억 달러, 소매 대출액 3% 감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거래든 인수합병이든 어떤 투기거래가 있어도 어쨌든 이익을 냈다는 데 시장은 환호하고 대중들도 혹한다. 다시 꿈 꿀 여지가 생겼으니까.

이처럼 현재의 시장에서는 과연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하는 사실 여부가 중요한 분위기가 아니다. 자본은 자본을 좇아 춤추고 그런 환상의 춤에 대중 미디어들은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여전히 내일의 소득이 불안정한 중산층은 뒤쫒아 시장으로 몰려들며 환상을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그렇게 증권시장은 거품을 만들고 또 즐긴다.

오늘 당장 소득의 변화가 없는, 빈곤의 경계에 서 있는 서민들조차 회복의 환상을 쫒아가려는 욕망에 보여주는 것들의 사실성 여부를 따져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희망이 무너진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작은 지표 하나에도 희망을 걸고 싶은 집단적 욕망을 권력과 자본은 미디어로 부추기고 통제한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이익은 더 극대화된다. 지금의 금융시장을 통한 자본 생존력으로 경기회복의 환상이 부풀려 가는 현상은 이제까지의 어떤 거품보다 더 거대한 거품을 양산해 갈 것이다.

경제 자체가 생존을 위한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이면서 결과가 됐다. 그 속에서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욕망 실현을 위해 종종 다수의 생존이 외면되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그런 극단의 양상으로 상당히 전진해 가고 있다.

자본은 자가 증식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능력은 없다. 브레이크 없는 외발자전거, 혹은 두껍게 눈 쌓인 산꼭대기에서 내리 구르는 눈덩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본에 브레이크를 걸 힘은 권력에 있으나 권력은 자본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배경 그림 없이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개혁세력들이 가장 결핍된 부분은 그런 자본과 권력의 하부에 존재하는 대중의 비논리적 선택에 대한 이해다. 생존을 위해서든 성장을 위해서든 저마다의 욕망에 급급한 인간들의 선택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을 테지만 그 비선형적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학습된 능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여러 개혁의 시도들이 종종 벽에 부딪치는 이유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지난 10여 년간 복지국가를 생산적 복지 모델로 바꿔나가는 실험에 나섰던 몇몇 유럽 국가들이 결국 사회적 경제를 버리고 경제를 위한 경제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 최근 국내 매체에 소개된 르몽드 기사를 인용하자면 덴마크는 기업 활동을 편하게 하도록 언제든지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유연성과 실업의 두려움에 떨지 않고 안정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개척하게 도와주는 실업대책으로 실업률 0%의 이상적 상태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유연적 안정성’이라고 불리는 그 제도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경제위기는 결국 기업의 유연성은 살려두되 노동자의 안정성은 줄여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세계 도처에서 기업과 기업을 소유한 자본은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해 거품을 만들고 노동자의 소득을 줄여나갈 것이다. 그 노동자가 곧 소비자이니 당장 실물경제는 살아나기 어렵겠지만 금융시장 안에서 자본은 자본끼리 부딪치며 부지런히 거품목욕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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