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관치금융 논란 '들썩'
금융권, 관치금융 논란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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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팔목비틀어 좀비기업 양산"
미소금융, 관치금융의 전형 비난
금융사들, 노골적인 '코드맞추기'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국내 금융시장이 '관치금융' 논란에 들썩이고 있다. 금융위기와 같은 전시상황에서는 일정부문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와 관치금융은 그 자체만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는 역사적 퇴물이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관료출신 득세
올 들어 불거진 관치금융 논란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시작됐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때만 하더라도 금융위원장에 민간 출신 인사가 기용되는 등 시장의 자율성이 우선시되는 모습을 보였었다. 기업인 출신으로서 관료주의 폐단을 설파하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1기 경제팀의 엇박자 행보가 계속되면서 결국 2기 경제팀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윤진식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 등 정통 관료 출신 인사들로 재구축 됐다. 2기 경제팀의 경우 관료출 특유의 정례화된 명령체계로 엇박자 논란에서는 벗어났지만 '관치 부활'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실제 2기 경제팀은 경제위기 조기극복이라는 명목 하에 금융사의 손발을 비트는 정책들을 일제히 쏟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대출 전액 만기 연장 및 자본확충펀드 조성이다.

물론 이같은 조치는 은행의 자산건전성 제고 및 실물경기 침체를 막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경제의 빠른 회복세는 글로벌 경제의 예상밖 선전과 환율 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2기 경제팀이 1기 경제팀의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구조조정 미비
이런 가운데 관치금융에 따른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 주도로 이뤄진 중소기업대출 만기연장의 경우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방해함으로써 '좀비 기업'들을 대거 양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1,602개 가운데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561개였으며, 이 중 289개사는 3년 연속으로, 82개사는 7년 연속으로 100%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부실기업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부도상태지만 때아닌 부동산 가격 상승이 생존기한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우리경제가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에는 망해야할 기업들이 살아남아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관치금융 행태가 노골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인 '미소금융'의 경우 관치금융의 전형적 사례라는 게 시장의 일관된 시각이다. 미소금융 사업은 금융위 주도로 금융권과 재계로부터 향후 10년간 각각 1조원을 조달해 금융소외자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금융위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암묵적인 '협박'이 존재하는 셈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신관치금융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 강화, 기업 구조조정 등에서 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성대 김상조 교수도 "우리나라 감독기구는 개별 금융회사의 인사·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이든 서민 금융지원이든 정책적 목적에 의해 관치금융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코드인사' 논란
관치금융 논란은 특정 사업을 넘어 인사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사퇴의사를 밝힌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정부로터 사퇴압력을 받아왔다는 점을 시인했으며,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던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이 지난달 금융계를 떠났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회사에까지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외 경제의 씽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국책연구기관 역시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로 속속 물갈이 되고 있다. 올초 사퇴한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은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지 못하면 제거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힌바 있다.

금융연구원장 자리에는 정부의 코드인사로 알려진 김태준 전 동덕여대 교수가 취임했으며, KB금융 회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 공석이 된 자리에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이미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민관을 가리지 않는 정부의 개입이 계속되자 민간 금융사들의 '코드 맞추기' 행보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올초 정부의 청년인턴 장려정책이 나오자 기업들은 너도 나도 인턴제를 확대 시행했으며, 녹색산업 지원방안이 발표되자 검증되지 않는 녹색산업 관련 금융상품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금융사들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라면 발벗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장 자율성이 크게 훼손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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