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실업 시대 구인난의 이면
100만 실업 시대 구인난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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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니 국제경기니 하는 거대담론은 접고 오늘은 소소한 일상 속의 얘기를 해보고 싶다.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허기진 모습, 곯은 모습들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싶어서다.

우리 동네 미장원과 대중목욕탕의 주인이 최근 바뀌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구인난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장원의 경우 먼저 원장이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고 해서 아예 영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목욕탕의 경우는 아예 욕장 안에서 장사하는 이가 철수를 했고 때밀이도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일이 늦어져 애를 먹고 있었다.

물론 양쪽의 사정은 각기 다르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독립적 영업을 하는 목욕탕 때밀이의 경우 손님이 줄어 매력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를 밀 사람은 한정돼 있는 변두리 아파트촌에 자리한 터에 그 이용 손님이 줄어드니 때밀이도 시들하지만 목욕탕 주인도 덩달아 손님이 줄어 한산하다. 새로이 투자한 주인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에 비하면 미장원의 경우 젊은 미용사들이 진득하게 일을 배우고 그 자리에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주인들이 애를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적한 동네 미장원들 중에는 1인 미장원들이 심심찮게 있다. 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라고 한다.

100만 실업자 시대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은 데 새로운 미장원 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일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지만 부모들의 자세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필자가 겪어본 일부 젊은이와 그 부모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한국 사회의 미래가 좀 걱정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미장원 주인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젊은이들이 조금만 힘들면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둬요. 처음 자격증 따고 들어와 한 달 만에 그만 두는 애도 봤어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대요. 으레 처음 들어오면 샴푸부터 시키는 데 그것 때문에 손끝이 다 헤졌다며 얼마나 애를 혹사시켰으면 이러냐고 엄마가 그만두라고 했대요. 엄마들도 참 큰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 한 번은 인턴의 엄마가 쫒아왔어요. 일 배우는 과정에서 야단을 맞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고 당신이 뭔데 남의 애를 야단치느냐고요 쫒아온 거죠.”

미용 일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생계를 위해 뛰어들던 예전 그들의 선배들과는 달리 멋을 창조한다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좋은데 그런 창조가 시작부터 가능한 것이 아니고 기초를 튼튼히 다진 후에 얻어지는 것임을 모른다는 한탄이 이어진다. 샴푸를 먼저 시키는 것은 물론 가장 단순하고 성가신 일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머릿결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배워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없고 오직 자격증만 따면 그 순간 대가가 될 듯 여기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꽤 번져 있다. 어른도 아이들도 모두가 남들이 이룬 결과만을 볼 뿐 그 과정의 고통은 보려 하지 않는다.

예전에 일가를 이룬 꽃꽂이 연구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손끝을 보여주며 “남들은 우아하게 꽃을 다루며 사니 얼마나 멋지냐고 말해요. 그렇지만 아름답게 꽃꽂이를 하는 사람의 손끝은 결코 그렇게 아름답지 않지요.”라고 말했다.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은 한국무용의 거봉 가운데 한 분과 어린 시절 양말 벗고 서로의 발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의 발은 거칠었다. 아직 부드럽기만 한 어린 학생의 발을 보며 그 분이 잠시 스치듯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무용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발이 예쁠 수가 없어요. 남들에게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주려면 그만큼 더 발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지요.”

성공적인 무용가로, 대학교수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이 얘기는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 잊히지 않는 감동을 안겨줬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사회 속에서 그 향기가 더 짙다.

우리 동네 미장원에서 들은 얘기나 또 몇 년전 필자가 겪었던 후배의 일이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그들 뒤에 “그까짓 거 얼마나 번다고...”라며 자식들의 직장을 그만 두게 하고는 실업자로 놀려두며 먹여 살리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장원 원장은 모두 공주와 왕자로 키운 탓이라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 폭등 속에 너무 쉽게 돈을 벌어본 경험의 소산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첫 월급이란 대부분의 직종에서 참 적은 액수이므로. 인플레 시대의 후유증은 이렇게도 미래를 갉아 먹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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