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과 조순
정운찬과 조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무총리 내정자 정운찬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갈수록 그 덩어리가 커져만 간다. 지금의 여야 의석수로 보자면 이 시점에서 국무총리 인준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은 하게 된다. 물론 그게 28일 당일로 끝나는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국회 의석수를 그런 구조로 만든 것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그래서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되든 달리 말할 무엇도 없긴 하다. 정치의 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정운찬씨가 국회 인준을 받든 못 받든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이번 정운찬 내정자의 사례 속에서 어떤 역사의 법칙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얘기를 다시 시작해볼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우리는 종종 반복되는 어떤 법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곤 한다. 그 법칙을 확인하러 굳이 멀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도 정운찬 내정자와 비교되는 몇몇의 인물들을 들먹이고 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정계 입문자로는 조순, 이수성과 한 묶음으로, 경제학자 출신의 입각자로는 조순, 김종인, 이학용, 김덕중과 또 한 묶음으로. 그들의 정치 행로와 오늘이 인구에 회자되며 ‘정운찬의 미래 점치기’가 유행한다.

이 가운데서도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다.

정치 행로도 이당, 저당 꼬리를 흔들며 다녔지만 최근 제자 정운찬 구하기에 나서면서 다시 한 번 학자로서의 소신을 내던졌다. 조순은 정운찬이 4대강을 반대한 것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그런 조순 역시 그간 4대강 사업을 반대해왔다. 이 둘을 한 줄로 놓고 보니 참으로 웃기는 한편의 코미디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이 동시에 싸잡아 한 묶음으로 평가되는 풍경이 재미있다.

조순과 정운찬,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사제지간이기도 하지만 소위 말해 한국의 최고 엘리트를 상징한다는 KS 라인의 선후배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이미 ‘가진 자’의 대열에 올라선 한국의 핵심 엘리트들의 동지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기 위한 열망 또한 다분히 엘리트적이다. 그런 그들이 보수적인 정부정책에 비판적 논조를 보인 것은 그저 학자 연 하느라 내뱉은 객쩍은 수사들이었음이 이번 청문회를 통해, 또 제자 구하기용 발언을 통해 증명된 셈이다.

청문회를 통해 까발려진 정운찬씨의 각종 비리`의혹은 조순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부자 정권하에서 별스러울 것도 없는, 그야말로 하찮은 문제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비리종합백화점이 됐든, 실망을 넘어 절망을 던져주는 사회적 재앙이 됐는 적어도 한국의 엘리트라면 적어도 저만큼은 타락해야 한다는 전형을 보여주는 것일 뿐인가 싶다.

병역기피 의혹? 4번의 신검과 한 번의 신검 연기를 통해 고령으로 면제됐다는 그 복잡한 과정은 천재들이 풀어내는 수학공식처럼 현란하다. 그러나 저들은 물을 것이다. ‘군대,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그러나 엘리트로 불리는 순간부터 그들은 공인이다. 그리고 사회는 공인에게는 의무와 책임을 묻는다.

다운계약서? 그거 집 한두 번이라도 사고 판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범해봤음직한 죄이기는 하다. 부동산에서 세금 적게 내라고 다 알아서 써주는 것인데 중뿔났다고 제대로 쓰라고 우길 사람들도 없던 그런 시절은 분명 있었다. 문제는 그 다운계약서가 작성된 시기가 언제냐다. 위법인줄 모르던 시절과 명백히 알던 시절 간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위장전입이니, 소득신고 누락이니, 논문중복게재 의혹이니 다 당사자로서는 그건 다 관행 아니냐고 묻고 싶을 터다. 그러니 바쁜 이 사회가 장삼이사에게 일일이 같은 잣대를 대지는 못한다.

화석화된 지식을 무기로 삼은 한국의 엘리트주의는 이미 계급주의의 견고한 틀 속으로 자신들도 가두고 한국 사회도 가두려 한다. 그리고 서울대 총장시절 보여줬듯 엘리트주의의 선봉에 선 정운찬은 대권 행보까지 염두에 둔 듯한 청문회를 치렀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