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와 한국 신뢰지수
청문회와 한국 신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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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뢰지수가 OECD 29개국 중 24위라는 보고가 나왔다. 금융시장, 공공기관, 종교`언론`노조`기업 등 사회기관에 대한 신뢰도 점수가 10점 만점에 5.21점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이 정도라면 한국인의 인간적 신뢰지수는 얼마나 될까. 수치화된 통계가 나온 것은 없지만 근래의 인사청문회 풍경을 보고 있으면 ‘바로 저런 이들을 이 사회의 지도층이라 하고 또 인정해주고 마는 한국사회의 인간적 수준이 한국 사회 시스템의 낮은 신뢰를 낳은 것이로구나’ 싶은 자성을 불러일으킨다.

내각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청문회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가 탈세와 재산신고 누락, 위장전입에 강단의 학자들이 빈번히 정권에 불려 나오면서 논문 표절시비도 심심찮은 목록으로 오르고 있다. 그 전의 병역비리나 이중국적 문제는 시간의 흐름 탓인지 한결 줄어든 반면 앞의 세 가지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올해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더욱 희한한 논리들이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자녀 학교 문제로 위장 전입한 것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라는 식의 논법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강남 학군 줄서기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걸 불법으로 삼아온 법과 관행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가 될 터이다. 앞으로는 어지간히 권세 있고 돈 있는 이들 중 강남에 살지 않는 이들이라면 체면 때문에라도 앞 다퉈 위장전입에 나서야 할 판이다. 오죽하면 시중에서 “위장전입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출세했다는 말도 못하겠다”는 농담이 다 나올까 싶다.

얼마 전까지는 군대 안 간 젊은이들을 신의 자식이라 불렀다는 데 이제 자식들을 소위 좋은 학군에 살게도 못하는 부모가 전학이라도 시키기 위해 위장전입 한 번 안 했다면 앞으로 무능한 부모를 넘어 무책임한 부모로 불리지나 않으려나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한시적 공공 일자리로 취업자 수가 늘었다는 팡파레를 울리지만 여전히 줄지 않는 청장년 실업자 군이 가난한 가족들에 생활을 기대며 서로 얽혀 수렁으로 빠져드는 중이다. 그동안 이 나라의 잘 나가는 이들은 위장전입이 됐든 강남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는 부동산 투기가 됐든 서로의 지연에 이어 학맥과 인맥 엮기를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기에 참으로 변명도 구구절절 많다. 그리고 그 변명들을 여당 의원들은 제 식구 감싸는 자세로 변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우리 옛 속담이 꼭 들어맞는 시절이다.

약간 샛길로 가보자. 이즈음 사실상 재택근무를 하는 필자는 TV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식후에 잠깐씩, 또 원고를 쓰다가도 눈을 쉬어줄 겸 짬짬이 TV를 주로 소리로 듣는다.

그러다 보니 흥미 있게 보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TV 시리즈물이라는 과학수사 드라마 CSI다. 미국적 애국주의가 종종 드러나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 흥미가 생기는 이유는 주인공이라 할 과학수사대 반장들의 태도 때문이다.

다수의 미국 영화가 ‘기자’를 보는 시선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지만 수사물들의 경우 특히 주인공들과 적대적 관계를 보이곤 한다. CSI 역시 그야말로 ‘재수 없는 기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깐죽거림은 기자의 눈을 갖고 봐도 속이 터질 만하다. 그 뿐 아니다. 상급 기관의 견제와 의심과도 직면한다.

그런데 구구절절 변명 따위는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통해 증명하고자 할 뿐 속 터지는 얘기에 일일이 맞서서 따지고 들지도 않는다. 자신들에게 적대감 내지 과도한 견제를 보이는 이들은 또 그들대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으로 돌리고 일의 성과로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변명 많은 한국 사회 지도층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되는 주인공들이 대리만족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구러 노파심 많은 필자의 눈에는 100만 백수 시대에 강남 대박 신화를 구가하는 이 나라 지도층의 모습에 영화 타이타닉의 한 풍경이 겹쳐 보인다. 배는 밑창과 옆구리가 갈라져 가고 가라앉을 위기가 닥쳐오는 시간에 밑에 층 가난한 선객들은 이미 야단이 났는데 선상에서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1등석 손님들을 위한 연주 소리가 요란하던 그 광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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