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과 골프
기억력과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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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지난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직 마음은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데 성큼 다가온 가을이 저 만치 앞서서 우리보고 따라오라 손짓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계절에 순응을 해야겠죠. 자연의 이치는 순응하는 자만이 살아남고 역행하는 사람은 도태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름을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우리는 다가오는 가을을 다시 사랑해야만 합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혼자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필드에서 느끼는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골프만큼 과거를 빨리 잊는 것에 도움이 되는 운동도 없습니다. 지난 홀에서 난 오비나 형편없는 세컨 샷, 뒤땅, 평소 즐겨 하던 거리의 어프로치를 핀에 못 붙인 경우, 홀 컵을 살짝 비켜간 1미터자리 퍼팅 등 기억에 남아 있을수록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아마 골퍼가 이런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나머지 홀들을 돌게 된다면 형편없는 스코어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한 홀의 그린을 떠날 때에는 그 홀에서 느꼈던 나쁜 기억이나 버디를 잡아 흥분된 마음도 홀가분하게 떨쳐 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골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선장과 같아야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을 처음 항해하는 선장처럼 순간순간 변하는 주변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자만이 실패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TV에서 미 PGA에서 우승한 투어 프로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시합에서 나흘을 연속해서 치는데 매일 매일 잘 맞을 수는 없고 볼이 의도한 대로 안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볼이 안 맞는 날에는 그날의 구질에 맞춰서 타겟 에이밍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볼이 끝에서 약간 밀리는 구질이 나오는 경우에는 그 순간 스윙을 어떻게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에이밍을 타겟의 왼쪽으로 하여 볼이 밀려도 목표로 떨어지게 스윙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의 컨디션에 맞춰 적응을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 선수가 과거의 기억만 믿고 샷을 임의로 조정하려 했다면 우승은 그의 것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구질에 순응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입니다.

우리 주말 골퍼들이 필드에서 잊어야 할 기억은 위에서 말한 전 홀의 나쁜 기억들만이 아닙니다. 연습장에서 열심히 연습하면서 기억하고 있는 각 채별 비거리입니다. 의외로 주말골퍼들 중에는 비거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7번 아이언이면 140미터를 보냈으니 필드에서도 무조건 140이 남으면 7번 아이언을 쳐야 돼”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스윙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거리라도 상황에 따라선 다양한 채를 선택해야만 하는데도 말입니다. 볼이 예쁘게 잔디에 잘 떠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습장의 비거리를 필드에서와 같이 보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퍼는 과거의 기억대로 잘 하고 있다 해서 좋은 골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고 기억해야 할 것은 가슴속에 잘 간직하는 골퍼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파이낸스 <금융인을 위한 골프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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