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마술, 통계의 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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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들어 비정규직의 대량 실직 소동이 일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노동부가 당초 내놓았던 전망 자료에 딱 들어맞게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가운데 30% 정도만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며 70%는 해고됐다.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데 앞장섰다. 연구기관들의 경우 비정규직 4천600명 가운데 단 5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럼으로써 고용기간이 끝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기를 2년 유예시키려던 정부안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데 깃발을 든 모양새가 됐다.

물론 감원이 필요하지만 동종 업계의 평판에 신경 쓰느라 주저하던 일반 기업에서도 이런 소동 가운데 슬그머니 비정규직을 해고함으로써 눈치 볼 필요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들이 발견된다. 사회적 불안정이 야기될 때 등장하는 가속 페달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정된 사회에서는 내부적 필요만으로 함부로 직원을 자르지 못하지만 사회적 동요가 시작되면 분위기에 편승해 손쉽게 감원함으로써 사회적 동요를 심화시키는 현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야당의 반대로 비정규직 법안의 실행을 유예시키지 못해 소동이 일었다는 정부의 비난은 나팔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이런 가속 분위기로 인해 더욱 증폭된다.

이런 소동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지난 16일, 기획재정부는 한국의 실업률 증가세가 OECD 회원국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고용 상황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좋은 편이라고 발표했다. OECD의 5월말 회원국 실업률 동향 보고서를 인용한 자료다.

재정부는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한국의 실업률 증가세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같은 공공근로 확대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경기 부양책에 의한 고용증가는 통계수치로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잠재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내수부진은 해소될 기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7년까지 4.5~5.0%에 이르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3%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보도되고 있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면 응당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때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던 한국은 지금 15위로 밀려나 있다. 더욱이 10위권에 들 때 예상했던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보다 15위로 밀려난 지금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시 10위권으로 재진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장률을 이끄는 요소는 통상 자본, 노동, 생산성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자본의 생산적 투자가 눈에 띄지 않고 노동인력의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속에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도 난망한 일이다.

노동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내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정부가 어떤 통계 수치를 들이대도 현재 한국의 내수비중 감소 속도는 OECD 국가 중 최고 속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6일 발표한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가 그렇다고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OECD 국가 평균은 내수 비중이 늘었지만 한국은 줄었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가 악화되면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흐름을 거스르며 수출업체들을 지원한답시고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느라 물가는 솟구치고 내수는 곤두박질쳤다. 기업 지원에 열을 올렸지만 고용이 늘지도 못한 채 실업자가 1백만 명에 육박했다. 실업자가 늘고 물가는 오르는 데 내수가 살아날 길은 없다.

내수가 줄면 대부분의 기업이 어렵겠지만 특히 중소기업이 큰 애로를 겪는다. 그 중소기업이야말로 가장 큰 노동인력 수요처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커진다는 것은 곧 한 사회가 악순환의 고리에 든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내수 진작이 시급하다.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 전제돼야 한다. 불안한 임시직 일자리로는 수요를 일으키기 어렵다. 비정규직보다 더 불안한 공공근로 취업으로 실업률 증가 속도가 낮아진다고 좋아하는 철없는 정부 정책으로는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거듭되는 희망적 해석과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기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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