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은 목청이 크다
양치기 소년은 목청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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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가 아닌 단지 우화에 불과한 얘기에 사실성을 불어넣고 상상을 보태면 종종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한다. 누구라도 알만한 대표적 우화로 특히 정치를 풍자할 때 종종 등장하는 단골 출연자가 거짓말에 맛 들인 양치기 소년이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쳐 일손 바쁜 마을 주민들이 산으로 달려오게 만든 것이다. 양이 주요 재산이었을 유목민 마을이라면 늑대는 무조건 격퇴시켜야만 할 적이었을 터이다. 또 산록에서 양을 치다말고 온 동네 사람들을 속여 불러들일 정도면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양치기 소년이 처음 거짓말을 시작한 이유는 ‘심심해서’였다. 어린 소년이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양을 치다보니 심심해 장난거리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온 마을 어른들이 달려왔다. 심심하던 소년에게는 그야말로 신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한마디가 가지는 영향력에 가슴도 뛰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위험한 일도 아니다. 한두 번은 어른들도 잠시 나무라다 마는 수준이었을 터이니.

그런 반응은 소년으로 하여금 손쉽게 거짓말의 습관을 들이게 만들었다. 지루해지면 언제고 다시 외치면 어른들은 달려왔고 한바탕의 소동을 치르고 나면 그날 하루는 후딱 지나가고. 그 뿐이었을 게다. 죄의식이 있을 리 없다.

문제는 이 양치기 소년이 몇 천 년을 두고 언제나 되살아나는 불사조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대중을 동원 혹은 조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치권력은 언제든 양치기 소년을 불러내고 그 때마다 소년은 부활한다. 그러면 대중들은 몇 번 쯤은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종종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하곤 한다.

그러나 애초에 양치기 소년이 겪었듯 반복되는 거짓말에는 종말이 있다. 몇 번 속고나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시해버린다. 그 전과 달리 실제로 일이 벌어졌어도 늘 그렇듯 또 거짓말하는 것으로 여겨 귀담아 듣지 않는다.

요즘 남북관계와 관련한 정부의 발표나 관련자 발언 등을 보면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일 될 것인지 그림이 떠오르곤 한다. 나이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라도 ‘말이 씨가 될’세라 입 다물고 단지 진행되는 과정들을 주시만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남북관계에는 과거와 다른 변수가 하나 추가돼 있다. 지난 1989년부터 시작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양대 정권 시절 크게 늘어난 남북경협기업들이다.

많은 이들이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간 긴장으로 개성 진출 기업만 있는 줄 여기지만 전체 남북경협기업은 740여개나 된다. 물론 정부의 방북 봉쇄로 인해 이미 부도가 났거나 철수한 기업이 그 중 200개가량 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상태를 지속하면 문 닫을 기업은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경협기업인들이 모여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또 “성공적인 경제협력을 이루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도 시급히 요청한다”며 절박한 입장을 표명했다.

통일부는 국민의 신변 안전을 위해 방북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업체 외의 남북경협 기업인들로서는 생산기지를 북한에 둔 채 방북을 전면 중단 당했으니 날벼락이 따로 없을 것이다.

현 정부는 당초 남북문제를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풀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경협기업들은 놔둔 채 북한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북한이 꼭 남한만을 의식해서 그랬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정치적 압박에 정치적 강수로 답한 꼴이 됐다.

그러자 정경분리를 주장해온 이명박 정부가 경제인들의 방북까지 차단시켰다. 정경분리 주장을 먼저 어기는 모순이 발생한 셈이다. 그에 대한 북한 쪽의 응답이 결국 개성공단에 대한 특혜 철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봐야 국민들 눈에는 단지 “또 그 소리”로 여겨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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