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누굴 살찌울까
저금리, 누굴 살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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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또 동결, 기준금리는 4개월째 2.0%를 유지하고 있다. 경기상황을 아직 낙관하기 이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통위 회의 직후 내놓은 통화정책방향 자료는 “최근 국내경기는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 등에 힘입어 내수부진이 완화되고 생산활동이 호전되는 등 하강을 멈춘 모습”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주요 선진국의 경기부진으로 향후 성장의 하향 위험이 있다”는 전망을 덧붙였다.

금리동결을 결정한 같은 날 한국은행은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에서 경기 하강세가 멈췄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아울러 경기의 불확실성은 높지만 앞으로도 개선움직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이런 전망의 근거는 생산 측면에서 제조업이 1월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서비스업도 4월 들어 증가로 전환됐으며 수요 측면에서는 설비투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개선되는 조짐이라는 진단에 근거한다. 건설기성액과 소비재판매액이 증가하고 월별 수출이 2월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는 점을 개선 조짐의 근거로 삼았다.

정책 당국의 입장에서는 낙관적 전망만 내놓을 수도 없고 비관적 전망만 내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건져내보려 애쓰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기 보다는 희미한 희망의 그림자만 보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죄악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 올해 경기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위해 애를 썼다. 안팎에서 위험하게 보는 전망수치를 고수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적 기대치가 낮아지는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 조금씩 성장 전망치를 낮춰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수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무리할 정도로 고환율 정책을 지속했다. 그럼으로써 경상수지 흑자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제살 깎아먹기 식 성장 전략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하반기 경기호전을 자신할 수 없다, 환율효과가 줄어들어 흑자규모는 줄어들 것이다 하면서도 흑자기조는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부는 흑자기조 유지를 위해 환율 다음에 어떤 카드를 쓸까.

지금 규모가 큰 시중 자금들은 단기자금시장과 부동산시장을 오락가락한다. 저금리 기조로 금융기관에 안정적으로 예치하지 못하는 불안한 자금들이 이리저리 쏠려 다니다가 어느 순간 핵폭발하듯 우리 경제의 뇌관을 건드릴지 장담할 수 없다.

원자재 가격은 계속 물가불안의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다. 이미 산업 부문 간 편중현상이 심화된 한국 경제에서 수입 원자재가격의 상승은 국내 물가상승의 위험과 더불어 수출채산성의 악화로 곧바로 이어진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얼핏 금리 동결을 지속하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기는 수출기업이 할지 한국 경제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핵은 수출기업이 아니라 불안하게 몰려다니는 투기자금들이다. 수출기업이 양지에서 땀 흘려 돈을 벌어들인다면 전체 국민 중 극히 소수에게 몰려가 있는 투기자금들은 그 땀 값을 빨아들이며 자가 증식의 길을 유유히 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가 주로 누구에게 득이 될까. 물론 집 한 채 은행융자 안고 소유한 서민들도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금융비중이 높은 생산기업들 역시 도움을 받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저금리 정책이 일반 서민가계나 중소기업의 대출 금리를 낮추는 데는 별 역할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대출을 받기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은행들이 서민들이나 중소기업에 대출해주기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익성 고려 없이 놀려두기만 할 리 없는 금융자금들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 고금리 금융업체들의 광고가 활발한 이즈음의 시장을 보는 심정은 그저 어수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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