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 남의 탓
내탓, 남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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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담한 서거로 인해 온 나라가 패닉상태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의 유서라고 공개된 글에서는 남은 이들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다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는 참으로 담담한 한 정치인의 마지막 소회가 담겨 있었다. 너무 힘들다고 시작한 그 글에서도 끝내 누구에겐가 책임을 돌리려 하지 않은 그 당당함이 그를 좋아했던 사람이든 싫어했던 사람이든 호`불호를 넘어 수많은 국민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 반면 지금 시장은, 혹은 시장을 보는 정책당국이나 모든 시장 참가자들은 갑자기 흔들리는 시장 상황을 두고 이런저런 구실을 달기 바쁘다. 그 상황을 조성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조차 그저 남 탓으로 돌리기에만 급급하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은 누구라도 부인하지 못한다.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면 외국인들은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갈 것이고 국가 신인도는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또 오랫동안 그런 현상을 경험해 왔다.

그러니 그 모든 현상은 오직 북한 탓일 뿐이라면 우리 사회는 언제라도 북한의 동정에 일희일비하며 스스로 상황을 다스려나갈 능력이 부재한 사회로 머물러야 할까.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다. 벼랑 끝까지 몰리면 죽기 살기로 초강수를 두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판단능력 부재를 증명하는 일일 뿐이다.지난 10년간 IMF체제 극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북한을 지원하고 남북이 어떻게든 제대로 된 소통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애쓴 것도 거창하게 통일까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세계 속의 잠재된 폭탄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세계인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것이 1차적 목표였다. 그럼으로써 빠른 시간에 IMF 구제금융을 상환하고 외국자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달러 강세 전략에 굴복하기보다 유연하게 상황 대처를 함으로써 원화 가치를 상승시키면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고지를 넘기도 했다. 내국인들의 해외 활동이 대폭 늘어나며 의도적이든 아니든 저절로 글로벌 마인드가 성숙해가고 있었다. 억지로 영어 몰입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젊은이들은 스스로 외국어 교육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 1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남북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긴장관계로 치달아갔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북간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시장의 안정성 역시 낮아져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고환율로 인한 일시적 수출 증가를 마치 안정적 성장궤도에 진입한 것인 양 자화자찬하며 서둘러 축배를 드는 분위기이지만 세계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향후 한국시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한국 시장이 지금처럼 정부의 끊임없는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한 외국자본들이 일시에 대거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내 기업의 대주주로 자리를 굳힌 자본들은 더욱이 쉽사리 탈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 자본시장에 외국자본들이 보기에 빨아들일 피가 남아있다고 판단하는 한 들고나기를 빈번히 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때마다 시장은 요동치고 당국은 조바심을 치며 국민연금이든 군인공제회 기금이든 계속 자본시장에 쏟아 부으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사회적 안정성이 그로 인해 떨어지겠지만 그 때마다 북한의 초강수 전술이 시장 요동의 원인으로 치부되면서 정책은 요지부동, 가던 방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지금처럼 시장이 어지러워지면 북한 탓을 할 수 있어서 한국 정부는 점점 더 성숙하기 어려워지는 게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소통을 통해 다졌던 시장을 소통부재 상황으로 몰아넣으면서 남의 탓만 하는 모습은 어린 아이들이 제 잘못으로 넘어지고도 땅을 나무라 달라고 어른들에게 응석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참한 최후로 인해 한국사회는 다시 한 번 요동치리라는 예상을 한국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정부는 또 내부적으로 염증이 진행 중인 한국경제의 책임을 돌릴 상대가 생겨서 다행이라 여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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