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들을 기르는 사회
'강호순'들을 기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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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구절양장이 물보다 어려워라/이 후엘랑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나 하리라’

예전 교과서에 실렸던 시조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이 한수에는 일체의 모험을 멀리 하고 그저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작자 미상의 이 시조를 서민이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서민들이나 청소년들의 활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양반 선비들의 여론 유도용 시조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 하필 진취성을 길러야 할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이처럼 무기력감을 조성하는 시조를 가르쳤는지는 지금도 다소 의아스럽다. 다만 이 시조가 보이는 풍조는 지금 한국 사회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은 성싶어 요 근래에도 종종 상기해보곤 한다는 점이 문제다.

새로운 투자처를 끊임없이 물색하고 미래를 향한 투자에 나서야 할 기업들이 여유자금은 안전한 금융자산으로 운용하면서 투자에는 나서질 않는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부가 못미더워 투자를 못한다더니 MB정부가 들어서서도 여전히 투자는 뒷전이고 돈놀이에만 빠져있나 싶어 한국사회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한국의 대기업들마저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던 지난 10년간 이미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충분히 예고된 미래산업으로서 대체에너지 분야에 숱한 특허기술들을 확보하고 이미 돈벌이에도 나서고 있다. 아마도 국내 대기업들은 뒤늦게 그 기술을 사다가 얹어 시장에 뛰어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발상은 마치 덩치는 이미 다 자란 젊은이가 여전히 어린 아이의 정신연령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처럼 답답하고 안쓰럽다. 자기 기술이  최소 80% 이상 되고 나머지 남의 기술을 얹어 출시해도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어려운 초경쟁사회에 나서는 기업의 태도로서는 적합지 못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과보호를 받아온 한국 기업의 병폐가 저처럼 정신적 지체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야 할 중소기업으로부터는 오로지 ‘더 싸게, 더 싸게’만을 외치며 착취를 일삼는다. 중소기업이 죽든 살든 그건 ‘나 몰라’라다.

이런 행태의 심리적 저변은 학교 현장에서 약한 아이들을 골라 왕따 시키고 집단 폭력을 가하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도, 기업도 더불어 사는 법, 그럼으로써 모두 함께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이미 8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서는 제로섬 게임 대신 윈윈 게임으로 나가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편 수많은 실용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종류들이 번역, 소개돼 읽혔다. 그러나 책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체화된 지식이 생기질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그 싹이 어린 아이들의 교육현장에서부터 폭넓게 발견된다. 물론 젊은이들의 진로 선택에서도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다.

삶의 즐거움을 배우고 새로운 인간관계에 눈떠가야 할 취학 전 아이들에게 영어단어와 숫자를 가르치고 계산법을 ‘암기’시키는 교육을 위해 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교육비 때문에 못살겠다는 한탄만 하늘을 찌른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공부는 즐거울 수 없는 짐으로만 각인된다. 그러면서 앞에 보이는 모두가 이겨야 할 적으로만 존재하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의 진로 선택은 안정적 지위 확보를 위한 기회 선점에만 온통 쏠려 있다. 모험의 길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새 길을 찾는 일보다는 ‘남들이 보장해주는 안전’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번 정해진 지위는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계급사회의 경험이 강렬하게 각인돼 있어서다.

그런 초기 전에서의 실패는 인생을 되돌릴 길 없는 수많은 낙오자들을 양산한다. 그들은 계급의 고착화로 인한 피해자들이지만 그들 역시 자기만의 또 다른 안전을 향해 몸부림치며 ‘함께’ ‘더불어’ 따위의 단어를 외면한다. 남의 고통에 무심해지며 스스로가 가해자가 돼 가는 데 대해서도 무감각해져 간다. 그렇게 ‘강호순’들이 자란다. ‘나는 아니’라는 의미로 돌팔매를 하나씩 들고 눈 벌겋게 나아가고 있다. 이 사회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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