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확충펀드 '제자리걸음' 왜?
은행 자본확충펀드 '제자리걸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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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관성 부재로 시장혼란 야기
은행권, '나홀로' 자본확충 지속
여권, 정부주도 '구조조정' 추진 검토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은행-실물간 '돈맥경화' 해결을 위해 정부가 야침차게 발표했던 자본확충펀드가 1개월이 넘도록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은행에 공적자금 투입에 이어 '배드뱅크' 설립을 계획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과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뢰부재가 가장 큰 '걸림돌'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광주·경남·기업·외환은행과 농협, 수협 등이 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론스타가 주인인 외환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들로 4대 시중은행 가운데서는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3곳이 빠져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 사실상 1~2년 내 매각이 어려운 만큼 론스타로서는 자본확충펀드를 담보로 배당금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은행들이 이처럼 자본확충펀드 신청을 꺼리는 것은 지난해말 후순위채 및 하이브리드채 발행 등을 통해 통해 정부의 BIS비율 권고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출자산이 심각한 수준으로 부실화되지 않은 이상, 당장 정부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본확충펀드를 거부하는 은행들의 표면적인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이다. 사실상 준공적자금 성격인 자본확충펀드를 받게될 경우 정부의 직간접적인 간섭이 불가피해지며, 이는 곧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단순한 자금지원 성격으로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외환위기를 기억하고 있는 은행들의 의구심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지난해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BIS비율 12%, 기본자기자본비율(Tier1) 9%를 맞추지 못하는 은행들은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은행권에서는 정부의 BIS비율 권고치가 '구조조정의 잣대'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정부-은행간 신뢰부재가 자본확충펀드 출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계속되는 '마이웨이'
무엇보다 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지난해말 제시했던 BIS비율 권고치 달성 지침이었다.
악화일로의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대출확대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BIS비율 방어를 주문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은행 건전성이 대폭 개선됐으니 대출을 늘리라고 주문해봐야 향후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는 은행들로선 기존 방어태세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은행들 역시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은행의 가장 큰 과오는 우선 국내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동안 대규모로 외화를 조달해 이를 대출에 활용하면서 단기외화시장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또 외환위기 이후 수년동안 자산경쟁에 치중한 나머지 건전성은 뒷전에 두고 매년 수조원의 순이익으로 외국인 주주와 임직원들의 배를 불려 왔다.

자본확충펀드 역시 '자기들만 살겠다'는 식의 행태가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111개사 조선·건설회사를 대상으로 한 1차 구조조정 평가 결과는 시장의 기대에 한참 못미친다는 평가다. 지난달 은행들은 1차 구조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2곳을 퇴출 대상으로, 14곳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했다.

퇴출 대상이 예상에 못미친 것은 퇴출 대상이 많을수록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규모는 커질수 밖에 없으며, 이는 곧 실적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말 4조5000억원이었던 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액은 지난해 말 9조9000억원으로 두배 이상 껑충 뛰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옥석 가리기가 늦어질 수록 구조조정의 폭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은행들이 근시안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이 받는 이유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일부 은행의 경우 자본확충펀드에 거부감이 크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여타 은행들의 눈치만 살피다 거부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자본확충펀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유동적'이었으나 결국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등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거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경쟁 은행들이 양호한 자산건전성을 이유로 정부지원을 거부하는 가운데, 하나은행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들일 경우 자산건전성에 대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한지주의 경우 조만간 1조6000억원에 달하는 증자계획까지 밝히고 있어 나머지 은행들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해서라도 시중에 자금을 돌게 해야하는 입장이지만 국민·신한·하나은행 등은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경영권 간섭이 힘들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등 여권 일각에서도 구조조정을 은행자율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정부는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지난 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은행에 맡겼지만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며 "시장의 힘에 의한 구조조정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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