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이라는 이름의 차명 정책
‘뉴딜’이라는 이름의 차명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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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몰아붙이던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뉴딜정책이라고 재포장하고 나섰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당시 ‘좌파정책’으로 거세게 몰렸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학 엘리트 코스를 거친 경제 관료들이야 번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련만 어찌 그런 포장을 내놓을 배짱이 생길 수 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하기야 내용을 놓고 보면 그냥 정치적 효용을 쫒아 ‘뉴딜’이라는 이름만 빌렸을 뿐이라고 답할 수는 있겠다.

좌파정책이라며 대기업과 그 언저리 세력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을 만큼 당시의 뉴딜정책은 ‘복지’와 ‘분배’를 중요시했다. 그저 가난한 이들에게 푼돈 쥐어주며 정치적 생색내기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공고히 하는 데 집중했다.

팽창하는 사회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복지’ 못지않게 그 당시에 이미 ‘분배’는 새로운 경기활성화의 동력임을 파악한 결과 나온 것이 뉴딜정책이다. 단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건설 대기업들 먹여 살리기에 돈 쏟아 붓는 것이 뉴딜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는 뉴딜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임으로써 그를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비촉진이 일어나 경제를 회생시킨 정책이라고만 배워왔다. 그런데 그게 사실과는 영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테네시강 댐 공사라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뉴딜정책 가운데 가장 굵직한 사업으로 눈에 띄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댐 공사 예산은 전체 뉴딜정책 예산의 10% 수준에 불과하단다.

4대강 개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어떻든 토목공사를 벌여서라도 늘어난 실업자들을 취업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아무리 몸을 낮춰도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국내 노동인력에 비해 훨씬 값싼 외국인 노동력이 언제나 대기상태라는 점이 문제다. 기업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분명하고 따라서 국내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는 미미할 것인데 거기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고 나면 그 뒷일은 어찌할 것이냐는 우려가 큰 것이다.

지금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대대적인 선전에 열을 올리는 4대강 정비 사업은 결국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더 많이 국내로 끌어들여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몇몇 토목 대기업들만 속살 찌우는 정책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토목 위주의 경기부양책으로 소득의 저변확대를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재 한국의 인력구조라는 점을 정부나 언론은 덮어두고 있다.

소득의 저변확대 없이 대기업 수익만 확대된다고 해봐야 경기가 살아날 수는 없다. 그런 성장은 지난 5년간에도 충분히 누려왔고 그런 성장의 결과를 폄하하며 집권한 게 현 정부 아닌가.

기업과 노동력의 유기적 결합 없이 한쪽으로만 돈이 몰려가봐야 시장의 돈이 움직일 공간은 계속 좁아지고 버블만 커진다. 반면 대다수 국민들은 더욱 가난에 허덕일 위험이 커진다. 이는 전형적 빈국의 사회구성 형태다. 우리가 사회적 양극화를 두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런 현상의 초래 가능성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병원에서 의사들은 급한 환자가 들어와도 함부로 뛰어다녀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들었다. 환자나 환자 가족들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조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적 위기가 심각할수록 침착한 대응자세가 절실해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국민들보다 정부가 더 허둥대고 있다. 가시적 실적 만들기를 닦달하는 정권과 그런 정권의 비위 맞추기에 급한 경제 관료들이 한통속으로 호들갑을 떠니 사회는 더 큰 불안으로 몰려간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공황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전사회의 정신적 공황이 먼저 오게 생겼다.

위급한 상황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 바느질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상누각은 아무리 지어봐야 사회적 재앙으로 돌아올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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