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건설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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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국내 경제기사 대부분은 두 줄기 큰 흐름 위에 놓여있다.

하나는 전 세계를 우울모드로 몰아가는 금융위기와 그 연장선에서의 각종 위태로운 전망들이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파장은 원자재 가격 폭락과 디플레 공포, 선진시장 신흥시장 할 것 없이 기초부터 흔들흔들하는 거대한 경제지진의 전조를 대면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한국의 정치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소동들이다. 기업구조조정까지 칼날을 휘두르고 나서겠다는 정부의 퍼런 서슬에 열심히 자기자본 확충에 나섰지만 아직 높아진 가계대출 연체율 등으로 목표에 한참 미달상태인 은행들이 이번에는 기업 연체율 폭등이라는 쓰나미 위협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국민적 반대에 부딪쳐 주춤하나 싶었던 대운하가 4대강 유역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면서 그 겉을 단단히 씌워 덮어줄 덮개로 대대적인 SOC 예산이 편성됐다.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과 같이 특정 지역에 따라서는 돈사태가 나고 있다는 소문이 시중에 공공연히 퍼져 있는 게 이즈음의 SOC 예산이다.

전 세계 경제의 축이 바뀌려 하는 이번 경제 위기는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의 대공황 경험만으로도 충분한 대응이 되기 어렵다. 하물며 한국경제가 겪었던 1997년의 외환위기는 이번 닥친 위기에 비할 수준도 못된다.

보수언론들이 이번 위기의 초기 일본은 이러저러해서 걱정 안한다더라 하는 식으로 국내 여론 마비용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일본마저 최근 또다시 10년 불황의 터널에 다시 갇힐까 전전긍긍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새 시대의 대안일 될듯 싶던 유럽 경제 역시 침체에 빠져들기는 매한가지다.

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 열기도 식고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인양 추켜지던 BRICs 등 신흥시장 역시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경제 한파는 세계적 자본들이 선점했던 석유가격의 폭락을 초래하며 전 세계적 디플레 공포가 일어나고 있다.

월가의 몰락과 함께 신음하는 미국 경제는 마치 거대한 기둥 하나가 쓰러지며 주변을 폭넓게 초토화시키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위기의 파장은 전 세계 어디라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거대한 화산 하나가 분출하면 몇 년간 전 지구의 식량 생산이 줄어들고 멸종을 맞는 생물종들도 다수 나타날 수 있다는 자연과학계의 보고도 있다. 같은 현상이 경제현장에서라고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다. 자연과학의 법칙을 뛰어넘는 사회적 법칙은 이제까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한국의 경제적 대응은 여전히 60, 70년대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다. 일단 정부 입장을 이해하는 눈으로 보자면 국가가 땡빚을 내서라도 기업들에게 쏟아부어주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나가면 기업 경영이 안정되고 일자리도 늘어 경제회생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인 듯하다.

가난하고 작은 나라 하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고 나설 때는 그런 단순한 기개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열을 갖고 있는 부자는 만을 벌었고 하나를 갖고 있던 가난한 자도 열은 벌 수 있었다. 그나마 가진 게 하나도 없던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빈털터리 상태다. 그렇게 자본주의의 단맛과 쓴맛을 두루 체험하며 지난 60, 70년대 한국은 세계 경제사에 하나의 신화를 싣게 됐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부실공사들이 줄을 잇고 그 부실공사 더미 아래 엄한 목숨도 참으로 숱하게 묻혀 갔다. 하루아침에 다리가 두 동강 나며 버스고 자가용이고 가릴 것 없이 와르르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고 호화찬란해 보이기만 하던 강남 요지의 백화점 건물이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너져 내리며 전 세계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보다 앞서 서울시가 달동네 정비를 기치로 내걸고 의욕 넘쳐 추진하던 시민아파트가 허무하리만치 먼지만 남기며 주저앉아 또 애꿎은 목숨들 숱하게 끊어 놨다. 그런데 묘하게 그 일을 추진한 당시 서울시장의 별명이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은 불도저였다. ‘성장’의 댓가로 또다시 그런 부실이 이번엔 국가 경제에 등장하는 게 아니길 진심으로 빌고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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