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잃는다는 것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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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중 신규취업자 수가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통계청 인용 보도의 수사법이 기가 막히다. 총 취업자 수가 줄고 20대 신참 직장인들이 떨려난다. 특히 정규직 임금노동자들에 비해 계약직을 비롯한 비정규직들의 실직이 앞장서서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노조에서 왜 그렇게 비정규직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금의 실정이다.

특히 실직자 수가 가장 많은 50대, 40대의 높은 실업률은 그 어느 연령층에 비해서도 그 파장이 크고 심각하다.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한국 산업의 미래 인력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근심거리라면 중장년층의 실직은 사회를 회복 불가능한 질병 상태로 빠뜨릴 수 있는 위험요소다.

40대는 지금 한창 자녀를 양육중인 세대다. 50대는 취업전쟁에 휘말려든 자식들과 함께 2세대 실업자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세대다.

불안하기는 20·30대라고 다를 리 없다. 취업하자 몇 년 되지도 않은 회사가 부도가 나고 아니면 신참 순으로 잘라 나가는 회사의 구조조정 칼날에 스러져가는 20대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일지를 생각하기에는 이 사회가 지금 너무 허둥대고만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부부 중 한쪽만 취업중인 가정은 가장의 실직에 대한 우려로, 양쪽이 다 취업중인 부부도 구조조정 우선순위가 될까 싶은 염려로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IMF 시절, 맞벌이 부부가 동시에 구조조정 대상에 드는 경우조차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일전, 집안 애사에 온 한 중년의 직장인은 지금 회사가 전 직원에게 12월 중 열흘씩의 휴가를 쓰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의 회사는 IMF 사태 당시 모기업이 공중분해 되며 간신히 살인적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고 새 간판을 달게 된 곳이었다. 10년 만에 같은 상황을 겪게 된 그 회사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냥 웃기만 했다.

어느 중소기업에선가는 일이 서툰 신참들부터 자르다보니 30대 후반의 과장이 가장 말단이 되어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리고 급여는 깎이고 깎이다보니 과장 월급이 예전 신입사원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살아남는 것만 다행이란다. 그야말로 날이 새면 나누는 인사로 ‘밤새 안녕 하십니까’라고 묻던 옛 인사가 되살아나게 생겼다.

개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장사 잘 되고 있는 대기업이라도 리볼빙이 막히는 경영실적 외적 변수에 의해 정부 쪽 손가락 끝만 바라본다는 소식들이 들리니 한숨이 절로 난다.

어지간한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실직 후의 삶은 생활에서 생존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몇 달만 방심하다보면 퇴직금 몇 푼이 새는 주머니에 넣은 동전처럼 술술 빠져나간다. 그나마 퇴직금 한 푼 못 건진 부도업체 직원들에겐 알몸으로 빙판에 내쫒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기다릴 뿐이다.

취업을 위해 얼마간은 발버둥치지만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상태에서 쉬울 리가 없다. 게다가 나이문제까지 걸려면 대부분은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장삿길에나 나섰다간 하고 있던 장사도 줄줄이 문 닫는 판에 밑천마저 까먹는 위험천만한 모험이 되기 십상이다. 섣불리 낯선 분야에 뛰어들 시기는 아닌 것이다.

젊은 부부가 서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아이들은 상처를 품고 자랄 위험도 높아진다. 사회적 양육의 개념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사회에서 각종 학원이 바쁜 부모를 대신해 방과 후 아이들을 맡아주고 있는 게 현재 한국 도시 가족들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인데 학원비 대기도 만만찮으니 아이들이 집안에서 방치되기 일쑤인 것이다.

현재 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갉아먹는 위험한 어둠이 사회에 덮쳐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럴 때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정책을 책임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생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며 준비해나갈 최소한의 종자거리는 남겨둘 줄 아는 지혜다.

집권 세력을 향해 누구 한자리씩 시키고 누굴 잡기 위한 집권이었다고 폄훼할 뜻 까지는 없다. 다만 엉뚱한 짓에 열을 올리는가 싶을 때 이 사회에 몸담고 사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분노가 치밀곤 한다는 점은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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