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정치권.정부.농협 '동상이몽'
농협 개혁?..정치권.정부.농협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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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까지 나서 농업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농협의 행태를 질타했지만 농협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과 정부, 농협의 생각이 달라 당분간 권력 집중과 비리에 취약한 농협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농협 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은 중앙회장의 대표이사 추천권이다. 2005년 농협법 개정으로 회장 지위가 비상임직으로 격하됐지만, 농협법 130조에 따라 여전히 회장은 중앙회 전무이사와 신용.경제 등 각 사업 대표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조합장 대표 회의인 '대의원회'가 회장이 추천한 후보에 대해 최종적으로 동의해야 임명이 가능하다지만, 중앙회의 지원이 아쉬운 일선 조합장들이 회장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하면 회장의 권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농민.소비자단체 대표, 학계 전문가, 조합장 등 18명으로 구성된 농협개혁위원회는 지난 7월 제출한 '농협개혁 과제'에 중앙회장 권한 조정을 핵심 사항으로 명시했다.

위원회는 회장의 연임 가능 횟수를 한 차례로 못박고, 대표이사 후보 추천권을 회장이 아닌 인사추천위원에 넘길 것을 권했다.

농식품부도 이같은 의견을 수용, 지난 9월 입법예고한 농협법 일부개정법률안에 회장 연임 제한과 인사추천위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후 공청회 과정에서 논란이 일자 개정안에서 관련 조항을 빼고 법제처에 넘긴 상태다.
농식품부 실무 관계자는 "농협 뿐 아니라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선출직인 회장에게 권한을 하나도 안 주면 뭐하러 회장을 뽑느냐'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도저히 원안대로 법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용 부문이 자기 이익만 쫓고 경제.지도 등 어려운 사업 지원을 꺼릴 경우에 대비, '컨트롤 타워'로서 사업 부문간 갈등을 조율하도록 회장에게 일정 권한을 줘야한다는 게 반대측의 논리다.

그러나 다시 대통령까지 "농협이 정치나 한다"며 과거 회장들의 전횡을 지적한만큼, 농협이나 농식품부는 다시 어떤 형태로든 지배구조 개선 방법을 강구해야할 처지다.
농협법 개정을 통한 회장의 인사권 박탈이 어렵다면, 남은 방법은 농협의 정관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이 법률적으로 공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기관 또는 단체의 정관을 정부가 마음대로 뜯어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농협이 정관을 바꾸려면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인가가 필요한만큼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여지는 있지만, 이 경우 회장 인사권 박탈 등 강도높은 지배구조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농협이 회장의 대표이사 추천에 부수적으로 내부 검증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넣어 정관을 고치거나 아예 정관 개정을 차일피일 미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측은 "정관 개정을 통해 회장 인사권을 제한하는 문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대신 농협은 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과 관련, 6시간여에 걸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금융지주사 도입'을 지배구조 개선안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부문을 각각 금융지주, 사업지주사로 떼어내고 중앙회에는 경영전략, 일선 조합 지원 및 교육, 상호금융, 농자재구매.군납 등 정책 경제사업 정도만 남긴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사업 부문들이 확실히 분리되면 자연스럽게 중앙회나 중앙회장의 권한이 축소되고, 각 부문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 게 농협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각 지주사 및 지주사 대표에 대한 중앙회장의 개입 범위, 인사권을 법과 정관 등 제도를 통해 근본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지주회사 체제만으로 지배구조 개혁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농협의 이같은 구상은 '10년에 걸쳐 경제사업 부문의 자립 기반을 닦은 뒤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한다'는 당초 신.경 분리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으로, 경제 사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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