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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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예상됐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도 정부도 덮어두자 작심했던 까닭인지 대다수 대중들에게는 느닷없는 경제 한파일 수밖에 없는 게 이즈음의 경기 상황이다. 그래서 대중들의 요구는 들쭉날쭉 대중이 없다. 대중들 스스로가 혼란에 빠져있다는 반증이겠다.

그런데 어쩌면 정부도 고의적으로 위기 우려를 덮으려 했다기보다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게 근래의 정책 행태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중이 빠져드는 혼란에 정책당국자들마저 같이 빠져들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정책은 언제나 그렇듯 ‘선택’의 문제다. 어쩌다 꽤 창의적인 정책을 내놓는다 싶어도 따지고 보면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시행됐던 것에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것일 뿐이다. 인류가 경험해온 많은 정책들 속에서 선택적으로 끄집어내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정책을 선택할 때 ‘누구’를, ‘어떤 사회’를 주된 대상으로 삼은 선택을 하느냐의 차이일 뿐 완벽한 정책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도 애당초 기대하는 것이 헛된 바람이란 의미다.

지금 한국사회는 구성원 대다수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 선, 절대 선인에 대한 갈망에 빠져 상대적 선택을 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 너나없이 정치에는 일가견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이 절대 선을 이루지 못하면 가차 없이 쳐내기를 도모하다보니 스스로 선택의 폭을 한 없이 좁혀 놓고 자기모순에 빠져 허덕인다. 다수를 위한 선택과 소수를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대중은 내용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기보다 그럴싸한 포장, 달콤한 유혹에 빠져 진창길로 들어서기도 드물지 않다.

정책을 다루는 이들마저도 무엇을 선택하는 데 서투르다보니 엉뚱한 선택으로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빠트리고 전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근래 정부가 벌인 대표적 오판은 집권 초부터 무리수를 두며 추진하던 고환율정책이다. 멀쩡하던 환율시장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다 밖에서 불어 닥친 금융위기 앞에서 정책이 힘도 쓰지 못하는 꼴을 자초했다.

그런데 이번엔 저축은행에 대한 지원에 거액을 쏟아 붓겠다고 한다. 이미 IMF 시절 많은 저축은행들이 통폐합되고 걸러질 만큼 걸러졌으니 남은 저축은행들은 살려야겠다는 정책의지를 갖고 있다면 굳이 그걸 가타부터 참견할 이유는 없다.

다만 문제는 저축은행들이 미국의 투자은행들에 못지않게 국내 부동산 버블의 틈에 끼어들어 버블을 키우는 데 단단히 한몫씩 했다는 점이다. 그런 위험한 마케팅은 시행할 당시부터 고위험성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모았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충분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고 큰소리 쳤다.

그래서 느닷없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도 불구하고 담보비율을 70% 이상 적용하는 무리수를 두었었던 것이다. 거품을 쫒아가며 그 거품을 더 부풀려내는 놀이는 어린 아이들도 신나게 즐길 줄 안다. 어린 아이들의 비누방물은 특별히 누구에게 피해를 입힐 일이 없다. 그러나 자본이 굴러가며 일으키는 거품에는 수많은 이들의 생활이 고사되고 만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장사하려 든다면 그건 백전백패 망할 수밖에 없다.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도 못한 채 은행 좇아가고 대부업체 따라나서는 식으로 자기정체성을 잃고 오락가락한 저축은행의 모습이 그렇게 애매하고 그래서 위험하다. 틈새시장을 찾는다고 시도한 모험이 위험한 부동산상품에의 집중이었다. 서브프라임시장에 올인 한 것이다.

당연히 경기가 뒷걸음질치고 부동산 거품의 붕괴가 시작되면 서브프라임 시장에 잇달아 위기가 닥친다. 실패한 마케팅의 책임은 해당 회사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공적자금이 그런 실패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IMF 시절처럼 정부가 은행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한 결과로 초래된 부실이라면 혹 모를 일이다. 정부가 책임질 부분이 적잖으니 지원의 부채감도 가질 만하다. 국민 세금이 그런 부채감 해소의 도구가 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각설하고 국가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위험이라면 논리와 당위를 떠나 어떻게든 제거하기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냉정히 얘기해서 지금 저축은행이 그만한 영향력을 갖지도 못했다. 게다가 모든 저축은행이 다 똑같은 수위의 위험에 빠진 것도 아니다. 온고지신 하려거든 옛 일을 제대로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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