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실기땐 국민부담 가중
구조조정 실기땐 국민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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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자취를 감췄던 '지급보증', '구조조정', '워크-아웃' 등의 용어가 언론지상에 재등장하면서 우리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내외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제 침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결국 외환위기 때처럼 국민 혈세로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사후적으로 부실을 처리하기 위한 과거 공적자금의 투입과 최근 유동성 공급 중심의 선제적인 정부 지원책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대원칙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환란이후 공적자금 168조원 수혈
1997년 말 갑작스레 맞은 위기로 금융기관의 연쇄도산과 실물경제의 위축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무너진 금융시장과 경제를 회생시키는 수단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선택했다.

공적자금은 크게 두 차례에 나눠 조성됐다. 1차 공적자금 투입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부터 1999년 말까지다. 정부는 기존과 같은 유동성 공급 확대나 부분적인 금융제도 개선 만으로는 금융구조조정과 실물침체라는 악순환을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총 62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기로 하고 1999년 말까지 1차 구조조정을 일단락했다.

그러나 1999년 하반기 대우계열사의 부도로 인한 손실이 다시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치면서 공적자금 추가 조성 필요성이 대두됐다. 정부는 결국 2000년 12월 국회 동의를 얻어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고 제2단계 금융구조조정 추진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1차.2차 공적자금 투입은 주로 국회 동의를 얻어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각각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국유재산관리 특별회계를 통해 서울.제일.산업.수출입은행.대한투신.한국투신 등에 10조원이 넘는 현물출자를 실시했고,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해 30개 은행 후순위채 매입 등에도 7조원 가량을 지원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공적자금은 예보와 캠코의 채권발행 등 102조1천억 원, 회수자금 재투입 42조3천억 원, 공공자금 19조7천억 원, 기타자금 4조3척억 원 등 모두 168조4천억 원이 투입됐다.

금융권별로 보면 은행에 전체 공적자금의 절반이 넘는 86조9천억 원이 투입됐고, 종금사 22조8천억 원, 증권.투신 21조8천억 원, 보험 21조2천억 원, 저축은행 8조5천억 원, 신협 4조9천억 원 등 2금융권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는 79조1천억 원이었다.

9월 말 현재 회수된 공적자금은 모두 92조6천억 원으로 회수율은 55%를 기록했다. 공적자금 회수는 ▲예보.정부 출자 금융기관.기업의 주식 매각 또는 배당 ▲파산배당.자산매각.후순위채권 회수 ▲캠코의 부실채권 국내외 매각 및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의 형식을 통해 이뤄졌다.

◇ 최근 금융안정에 133조 투입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 안정을 위해 투입했거나 지원할 금액이 무려 130조원에 이르면서 과거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대규모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달러난을 덜기 위해 지금까지 300억 달러를 공급한 데 이어 수출입금융 지원 160억 달러 등 추가로 250억 달러를 풀 예정이다. 은행들의 외화 차입에 대해서는 140억 달러의 지급보증을 설 계획이다. 이를 원화(9∼10월 평균 환율 1,231.7원 기준)로 환산하면 총 85조 원에 이른다.

또 금융회사와 기업에 원화 유동성을 수혈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총액한도대출을 2조5천억 원 늘렸고 이달 들어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통해 2조 원을 공급했다.

정부는 1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해 회사채와 금융채 등의 매입에 나서기로 했으며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 증자(1조3천억 원),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출연(5천억 원)과 보증 확대(6조 원) 등도 계획하고 있어 이를 모두 합할 경우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원하는 금액은 133조 원에 달한다.

금융기관 및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 방안이 쏟아져 나오자 일부에서는 과거 공적자금과 같은 대규모 국민부담을 떠올리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전문가들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의 공적자금과 최근의 정부 지원 방안은 성격을 달리한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과거 공적자금 투입은 이미 발생한 부실을 처리하기 위한 금융구조조정의 성격을 지녔지만 최근은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국내외 유동성 공급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서 공적자금은 정부에서 운용하는 기금과 재산에서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금으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최근 유동성 지원은 공적자금 지원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적자금은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목적인데 최근 정부지원은 구조조정 보다는 유동성 공급에 중점을 두고 있어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아직 공적자금의 분류에 들어갈만한 자금 지원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공적자금은 은행이나 금융기관의 퇴출, 부실자산 매입 등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었지만 이번에는 부실이 현재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국민부담 최소화해야"
공적자금이 외환위기로 무너진 금융시장과 경제를 회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수 십년 간 쌓인 금융기관의 부실을 털어내고 외환위기를 맞아 뇌사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당시 감사원 특감 결과에서도 지적됐듯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공적자금 조성 규모와 시기를 오판해 뒤늦게 추가 조성에 나눔으로써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상당 부분이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공적자금은 '절반의 실패'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 2002년 발표한 공적자금 상환대책에 따르면 투입된 공적자금 중 69조 원 규모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손실 예정인 69조 원 중 금융권에서 20조 원을 부담하되 나머지 49조 원은 일반회계와 세계잉여금, 우체국예금.보험으로부터의 출연 등 재정에서 부담하도록 했다. 결국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을 막고 구조조정을 진행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민이 떠안은 셈이다.

최근 금융위기 발생 이후 정부와 한은의 지원이 과거 공적자금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실이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은행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이나 수출입금융 지원, 국책은행에 대한 정부 현물출자 등도 사실상 국민의 혈세를 재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시적 정책 수단에 대한 우려와 별도로 위기 탈출을 위한 거시경제 수단 선택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거시정책 수단으로 재정지출 확대와 대규모 감세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지만 감세와 재정지출 동반 확대는 결국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0%대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건전한 편에 속하지만 재정지출 확대 및 대규모 감세정책의 동시 추진은 결국 재정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최인기 예결특위 위원장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조절을 부정하진 않지만 있는 사람의 세금을 깎아주고 국채 발행으로 이를 충당하는 방식은 잘못"이라며 "내년 예산은 `부자감세'와 재정지출을 동시에 확대해 사상 최대 재정적자를 시현하는 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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