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때 구조조정 배울건 배우자
환란때 구조조정 배울건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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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직후 기업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일했습니다"
1998년 5월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내에 설치됐던 '구조개혁기획단'에서 근무한 현직 과장급 공무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이 단장을 맡은 구조개혁기획단은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 작업을 수행해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구조개혁기획단은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된 2000년 12월 해체됐지만 올해 11월12일 금융감독원 내 '기업금융개선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부활했다.

금융위는 간부급 직원 3∼4명을 이 지원단에 파견해 기업 유동성 지원과 구조조정을 민간 감독기구인 금감원과 협의하에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와 중소기업 등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우선이지만 전세계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는 내년에는 다른 업종으로 경영난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구조조정 전담조직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더라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취약한 업종에 대한 신속,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외환위기..구조조정 시대 개막
1997년 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부실 종금사와 대기업들은 제일, 서울은행의 건전성에 타격을 줬다. 또 고금리로 기업부도가 크게 증가하면서 다른 금융기관들로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면서 총체적인 금융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64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 매입 등에 투입했으며 우선 14개 종금사를 정리하고 5개 은행의 퇴출을 결정했다.

이후 회생 가능한 금융회사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회생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금융회사는 과감히 퇴출시켰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2000년 8월까지 11개 은행, 6개 증권사, 13개 보험사, 458개 기타 금융기관을 합병, 자산부채 이전, 청산 등의 방식으로 정리했다.

1단계 금융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한 결과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제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 하반기 대우계열사들의 연쇄 부도가 2000년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악화시킴에 따라 정부는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해 2단계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단계에서는 12개 대우그룹 계열사 처리 문제와 증권, 보험, 자산운용사 등 제2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이 핵심 과제였다.

◇기업 구조조정도 정부가 주도
당시에는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도 정부가 주도했다. 구조개혁기획단에서 금융구조조정반은 은행 등 금융회사의 살생부를 만들었고, 기업구조조정반은 기업부문의 저승사자 역할을 했다.

겉으로는 은행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회생가능한 기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 아래 정부가 적극 개입했다.

현재 기업구조조정촉진법으로 법제화된 워크아웃은 기업이 완전히 부실화되기 전에 채권단 협약에 따라 기업회생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법정관리나 화의 등 법적절차에 의한 방식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1998년 5월부터 각 은행은 '기업부실판정위원회'를 설치해 기업들을 정상, 회생가능, 회생불가 등 3단계로 구분했다. 64대 그룹 소속 부실 징후기업 총 313개를 대상으로 판정을 실시해 대상기업의 17.6%인 55개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판정했다.

정부는 특히 5대 재벌에 대해서는 세부 이행계획서를 받으며 계열사 매각과 '빅딜'을 강하게 압박했다.

중소기업도 우선지원, 조건부지원, 지원중단 등 3단계로 분류해 선별적으로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이 협상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했으며 부실기업 처리를 두고 금융기관 사이에 발생하는 이견을 중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을 통한 자율 구조조정을 표명했지만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이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실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외환위기 때에 비해 기업과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이 양호해 당장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구조개혁기획단은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이번에 설립한 기업금융지원개선단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경기침체가 심화돼 부실이 커지기 전에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 중 살릴 곳은 살려 나중에 부실처리 비용을 줄이자는 프리워크아웃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시급한 과제로 부상한 건설회사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정부는 은행 대주단 협약에 맡겨 놓고 한 발 물러서 있는 모습이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강조하고 있어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감행하기가 녹녹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기 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최근 은행연합회장에서 물러난 유지창씨는 "구조조정을 한다면 투명한 절차에 따라 기준을 정해서 기업이 회생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기구를 만들고 신속하게, 충분히 해야한다"면서 "구조조정은 이미 과거 외환위기 때 만들어진 교본이 있는만큼 그것대로 하면 된다"고 밝혔다.

외환위기때 구조개혁기획단에서 기업구조조정에 참여했던 서근우씨는 "구조조정은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하며 감기환자(회생가능한 기업)나 암환자(회생 불가능 기업)를 똑같이 취급해선 안된다"면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기업의 어려움이 일시적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인지를 가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은 신속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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