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구조조정 신속.과감해야"
전문가들 "구조조정 신속.과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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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살리는 우 범해선 안돼"
경제 전문가들은 23일 구조조정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란당시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합도산법을 정비하고 은행 자체의 구조조정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해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옥석을 가려내는 구조조정은 시장 기능을 통해 해결하되 정부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전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 심의관)
지난 환란의 시작은 대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융 부채를 지면서 시작됐다. 쉽게 말해 기업 경영해서 나온 경상이익으로 부채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기아차였다. 그러나 일부에서 이 문제를 상업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기아차는 국민 기업'이라며 기아차살리기운동본부 등을 결성하고 전라도 기업이라서 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치권이 거기에 휘말렸다. 이후 기아와 한보의 불똥이 대우로 튀었고 사태가 빠르게 번졌다.

현재가 환란당시와 같은 점이 있다. 현재의 대주단협약은 환란 당시 부도유예 협약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자금 조정과 금리 인하 등 연명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앞으로 상황이 악화되면 결국 출자 전환이 추진될 것이다. 기업이 이자 갚을 능력이 안되니 꿔준 돈을 자본금화하는 것이다. 출자전환을 통해 일단 건설.조선사들이 살 수는 있겠지만 금융기관에 회사를 빼앗기는 셈이니 회사 입장에서는 버틸 가능성이 크다. 환란 때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대우건설 팔았고, 산업은행 등이 대우조선 대우증권 등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는 은행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상황이 가속적으로 나빠질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은행을 통폐합하거나 구조조정에 착수할 시점은 아닌 것 같다.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직접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적자금을 넣어도 기업에 돈을 대준 은행.보험 등 금융기관에 넣어야 한다. 기업에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

◇유지창 은행연합회 회장(전 금감위 부위원장)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구조조정 방식은 기업들을 너무 불안하게 한다. 시장 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야한다. 그때 필요한 조치는 괜찮은데 유동성 문제 등으로 죽을 수 있는 기업을 살리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기업들이 많이 있겠지만 구조조정한다고 하면 그 회사 종업원이나 사장은 얼마나 불안하겠느냐. 은행권 구조조정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려우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건설사 대주단 협의회도 당초 설립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려울 때가 돼서 한 은행에서 기업으로부터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다른 은행도 다 빼간다. 그래서 기업이 망할 지경이라면 담보를 챙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서로 경쟁적으로 돈을 회수하는 '치킨 게임'을 하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다른 얘기다. 구조조정을 한다면 투명한 절차에 따라 기준을 정해서 기업이 회생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기구를 만들고 신속하게, 충분히 해야한다.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여기에는 이론이 없다.

이미 10년 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교본이 있다. 그것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그전에 과연 구조조정에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 기업이나 종업원들이 지나친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것이냐 등을 결정할 때까지는 신중해야 한다.

◇남상덕 한국은행 감사(전 금감위 구조개혁단 심의관)
선제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해결하는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에 실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 부문은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 확충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 부분은 일시적 유동성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인지를 가려서 단지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문제되는 기업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해소시켜야 하며 구조적 문제인 기업은 구조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지원을 받은 만큼 기업도 핵심사업에 집중하는 '리스트럭쳐링'과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도 자동차 산업에 무조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응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요구하는 것으로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통합도산법 등 기업 구조조정 제도를 잘 갖춰놨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이를 통해 시행하면 된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권투로 비유하자면 'KO 펀치'를 맞은 비상상황이어서 은행을 합병하고 대기업을 빅딜 등을 했지만 지금은 잽을 여러 차례 맞는 격으로 이해당사자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지나칠 수 있다.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의 협력, 고통의 분담이다. 외환위기 당시에 근로자와 주주, 채권 금융기관 등이 손해를 보면서 고통을 나눴듯이 이해관계자가 상황인식에 대한 공감을 가지면서 해결해야 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구조조정의 기본 방향은 신속함이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듯이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그렇다고 획일적으로 모든 기업들에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기업에 똑같은 잣대 들이대다 보면 멀쩡한 기업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우선은 이미 알려진 대로 건설업과 조선업이 가장 시급한 분야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해서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그 다음 방식이 문제인데 어떤 기업을 지원해서 살리고 어떤 기업은 퇴출시킬 것이냐 하는 기준은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게 좋다. 정부가 그걸 선택하는 건 현실적으로도 무리다. 능력이 안 된다. 구조조정은 시장이 담당하되 정부는 그걸 하도록 푸시(압박)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누가 일부러 누구를 죽인다는 식의 자의성 논란이 불거지지 않는다. 사실 이미 정부는 나서고 있다. 건설사 대주단 협약이나 패스트트랙 등이 그것이다. 다만 시장에서 참여하지 않고 있으니 구조조정이 안 되면 모두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끌어가야 한다. 또 자율적이란 것은 은행과 기업, 산업 내의 상호 관계 등에 의해 대상을 골라야한다는 의미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지금은 외환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직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 금융 기관들이 외환위기 때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절박성이 약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 경기와 국내 경제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위기 상황이 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두 가지에 역점을 두고 지금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하나는 적어도 내년 초까지 원화 유동성 문제가 심화되지 않도록 시중 자금을 과감하고 충분히 풀어야 한다. 금리 인하와 직접적인 자금 지원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내외 경기가 급락하면 건설업이나 조선업과 같은 일부 산업 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이 문제가 된다. 정부는 도미노식으로 사안별 구조조정 방안을 내세워서는 안되고 차제에 국내 산업 구조 조정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산업구조 경쟁력 강화단'(가칭)을 만들고 대규모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하여 국내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살릴 기업을 정하여 이들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력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목표와 원칙을 정하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금융기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설득하며 강력하게 추진하는 리더십이 없이는 향후 1-2년 동안 겪어야 할 지금의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없다. 더욱이 세계적인 산업 구조조정 열풍이 불 것에 대비한 사전적 구조조정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국 경제가 경기 호황기에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지금은 대기업 부실 문제는 없고 가계부채도 현재로서는 부실이 있어 보이지 않아 펀더멘털은 나쁘지 않다. 건설업과 저축은행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연결된 문제가 있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한다면 부실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정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 전체로 보면 건설업이나 저축은행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들이 환차손과 주가 하락으로 손실이 발생했는데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을 구조조정하면 손실이 늘어나니까 은행이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환시장의 안정이다. 정책의 역량을 수출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곧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서 스스로 외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능력을 국제시장에서 평가받아 외채만기가 연장돼 단기 문제를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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