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도 잡는 사회적 병
문근영도 잡는 사회적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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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인터넷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연예인 여럿 잡은 인터넷 악플이 이번엔 국민여동생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사랑받고 있는 어린 여자 연기자의 선행을 먹잇감으로 삼자 이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리플들이 맞불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문근영이라는 어린 연기자가 지난 6년간 남모르게 해왔던 선행이 졸지에 좌파의 선전활동으로 둔갑하고 와글와글 논쟁으로 비화하는 데에는 나이 지긋한 한 우익 논객이 배후에 있어 또 다른 논쟁을 낳기도 한다. 기부가 좌익 선동활동이라는 기묘한 논리로 악플러들에게 먹잇감을 던진 이는 한 때 군사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극우적 논평을 쓰곤 하던 지만원씨다. 그는 현재 시스템클럽 대표라는 직위로 활동 중이다.

발단은 이렇다. 문근영은 지난 6년간 사랑의 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에 익명으로 80여억 원의 기부를 했다. 그런데 공동모금회에서 최근 그 사실을 언론에 발표했다. 기부금이 뚝 끊어진 이즈음 같은 불황기에 이런 미담을 알림으로써 기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좀 높여보려는 의도였음 직하다.

그러자 지만원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문근영의 기부 행위를 좌파의 교묘한 선전활동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실었다고 한다. 문근영의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빨치산 출신이므로 문근영이 좌파의 선전에 동원된 것이라는 논리다.

이 글들을 몇몇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 날랐다고 한다. 그렇게 퍼트린 글에 악플러들이 붙기 시작한다. 문근영은 선행을 하고도 욕을 먹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러자 다른 네티즌들이 문근영 수호에 나섰다. 악플 반대 서명운동에 시작한 첫날 6천여명이 참여하는 등 큰 호응도 받고 있다. 그 사이 문근영의 별칭도 국민여동생에서 천사 문근영으로 바뀌었다.

이 문제가 터진지 여러 날 된 지금 와서 새삼 누굴 편들거나 비판할 의도는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 집중적으로 악플을 달아대어 여러 어린 연예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은 우리 사회의 병증이 무엇인지 모든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왜 누군가 하나 타깃이 되면 죽음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집요하게 악플을 달까, 그런 악플을 다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악플을 다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극소수뿐일까 등등 짚어 볼 요소들이 많다.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 그 때 잠깐 이런저런 진단들이 나오다 며칠 지나면 슬그머니 사회적 관심도 사라진다.

그런데 인터넷 악플들을 보면 대개는 논리도 없고 맞춤법도 잘 모르는 초등학생의 글 같이 유치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누구라도 찌르고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진하게 묻어나는 살벌한 표현들이 난무하기도 한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섬뜩할 정도의 거친 글들이 다스려지지 않은 적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시간대를 보면 학생들도 학교에 있을 시간에도 많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학교에 가지 않는 청소년들일 거라거나 미취업 청년층일 거라고 단정할 근거도 별로 없다. 직장 내 컴퓨터로 악플을 올리는 이들이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겉보기에 모범청소년이거나 내 옆의 조용한 직장인일 수도 있다.

악플을 없애기까지는 몰라도 줄이기라도 하려면 우선 그런 이들이 대체 몇 명 정도나 되는지, 어떤 계층, 어떤 연령층에서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몰려다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직은 그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병적인 열등감이 아니고서야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반성 없이 악플을 반복할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사회적 소요로 발전할 지도 모를 분노마저도 감성 여린 연예인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온몸으로 막아서게 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들을 낳은 사회 속에서 우리 모든 개개인들은 책임이 없을까. 멀고 가까운 이 가릴 것 없이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느끼지 조차 못하는 무신경함, 내 책임에는 둔하고 남 탓하기에만 열 올리는 비겁함이 만연한 사회의 병증이 익명성에 기대어 유명인을 향한 무차별적 증오로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병든 사회의 미래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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