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먼저 살려야 정책도 산다
은행 먼저 살려야 정책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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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후반 주식시장에는 올해 들어 20번째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환율시장은 하루 몇 십 원 단위로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상황이 몇 달째 지속된다. 은행들은 BIS 의무비율 방어에 급급하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안정화, 금융기관의 건전화가 발등의 불이 됐다.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상태는 당연히 모든 경제현장의 비명소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개개인들로서는 금융기관과 별 인연 없이 살던 취약계층이 맨 먼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쓰러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불만의 소리를, 고통의 호소라도 할 수 있는 계층은 그보다는 다소 낫다는 차상위 계층부터다. 기업 가운데는 당연히 영세기업이 소리도 없이 스러지고 그래도 어지간히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중소기업군의 붕괴는 당장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경기회복의 길을 가로막고 나선다. 그러나 은행의 손길은 대기업의 요구를 수용하기에도 버겁다. 지금 BIS 비율 맞추기에도 버거운 은행이 기업 사정 먼저 살필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다고 지금 은행에 대한 비난이 친정부 언론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정부 눈치 보기에 오래 길들여진 은행들 입장에선 안팎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진 셈이다. 지금 대통령은 잇달아 공개석상에서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대표적 친정부 신문에 실린 기사가 그 내용을 잘 요약했기에 잠시 인용하자면 11월 들어 무려 다섯 번이나 은행을 비난했다.

“은행 꺾기가 여전하고 정부 돈 풀어봐야 창구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은행은 돈이 필요 없을 때는 갖다 쓰라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안면 바꾸는 것을 종종 봤다.” “은행이 과연 필요한 돈을 제 때 줄지 걱정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해 달라.”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금융위기 때는 회사가 제품을 못 팔아서가 아니라 돈이 돌지 않아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의 경험이 우러난 비판으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 전체의 그림을 보며 내놓는 균형 있는 주문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금융위원회가 보험사에 회사채 만기연장을 요청하고 연기금으로 회사채 매입하는 문제를 정부가 검토한다지만 이런 조치야말로 모두가 다 끌어안고 함께 죽자는 위험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실상 은행들로서는 그 많고 많은 중소기업 가운데 미래 있는 중소기업을 찾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고 한다.

민영화의 길을 가면서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 은행들로서는 미래 없는 기업에 지원하고 그 뒷책임을 떠안을 수는 없을 것이니 그런 호소를 묵살할 수는 없다. 지금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체질상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속에 그간 부풀대로 부풀었던 거품 걷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가 숙명처럼 반복해야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급변하는 산업시스템으로 인해 낙오된 부실기업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져간다. 그런 당연히 거쳐야 할 순환 과정을 거부하면 나중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부작용이 폭발적으로 발생한다.

자본주의 경제가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사회적 잉여생산을 늘려감으로써 경제적으로 남보다 앞서 가게 된 지금 우리가 이만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산다. 그런 만큼 자본주의 시장을 지키고 싶다면 늘 경쟁의 위태로움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정부들에 비해 유독 그런 경쟁을 찬양해온 정부다. 사회복지를 뒤로 미루더라도 경제성장을 우선순위로 해왔던 정부다.

왜 이제 와서 새삼 관리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서둘러 기업 지원만을 말하는지 혼란스럽다. 은행이 생존을 위해 버둥대는 데 대고는 자구노력 부족을 꾸짖고 있다. 그러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중소기업 대출을 강제해서 그 책임은 누가 지겠다는 것인지, 언제까지 그렇게 중소기업들을 안고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계속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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