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의 생존방식
위기 속의 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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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미 간에 체결된 통화스와프 300억달러는 봉급생활자들이 마이너스 통장 하나 만든 정도의 심리적 안정은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적 실물위기는 그리 쉽게 걷힐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기업이든 가계든 이젠 됐다고 안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홍승희 주필©서울파이낸스
한국정부는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단지 IMF체제를 경험한 세대의 과잉반응 정도로 여겨 외화 유동성 확보만으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시장은 단지 눈앞의 커지는 파도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쓰나미를 예상하며 저마다의 대책을 찾는 투자자들에 의해 분위기가 주도되고 있다.
물가를 아예 포기한 정부가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을 거푸 쏟아내지만 은행은 여전히 대출 중단 상황을 풀 수 없다. 요즘은 자금사정 괜찮은 대기업들이 저축은행을 통해 연 13%짜리 할인어음까지 발행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 한계상황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을 더욱 벼랑으로 몰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 실물위기가 가시화돼 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체를 면하고 생존할 수 있을지를 찾는 지경에 이른 기업이, 가정이 나날이 늘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몇가지 점에서 현 인류문명이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상황을 경고하는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여기저기서 현재의 인류는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최대치까지 끌어 쓰고 이제 막바지로 몰려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조들이 보인다.
우선 현재의 자본주의 문명은 철저히 빚에 의해, 거품에 의해 유지되는 체제라는 점이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위기의 출발점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역시 빚으로 재화를 늘려가던 뻥튀기 경제시스템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경제체제 역시 빚으로 시작된 성장주의의 외발자전거 위에 있다. 어느 시점쯤에서 외발자전거를 버리고 두발자전거로 바꿔 탔어야 했고 지난 10년은 그런 변화를 위한 뒤늦은 도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끓어오르는 사회적 욕망이 채워지지 못한 채 성장의 외발자전거로 회귀하려는 무리수가 횡행하며 세계적 위기의 최전선으로 내닫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일궈진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붕괴가 시작되면 최근 새로이 작동하기 시작한 글로벌 공조체제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다급한 상황에서 국가주의는 더욱 힘을 받게 되고 국가 단위의 생존본능이 이성을 앞지르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위기를 석유채굴정점이론과 묶어 본다면 앞으로 우리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질 가능성만 점점 커진다. 지난주 공중파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지만 석유채굴정점이론이란 매장량의 50% 정도를 채굴하고 나면 석유채굴량의 감소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텍사스 유정들이 이미 그 이론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중동 지역 몇나라를 제외하면 전 세계 유정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단다.
석유생산량은 앞으로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중국이 만주 지역 유정의 채굴량이 감소하자 석유를 빼낸 공간에 물을 밀어 넣어 압력을 유지시키며 채굴량을 늘리는 방법을 채택했으나 이제 그마저도 점차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이런 방식을 쿠웨이트 등 중동국가에서도 이미 사용하고 있다니 사용가능한 석유자원이 현재를 정점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에너지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석유제품이 우리 생활을 구석구석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위기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인류가 빠르게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에너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세계인구의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섬뜩한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문명이 늘 발전만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생존법을 모색해야 한다. 위기가 커질수록 큰 몸집이 불리해진다. 빙하기를 살아남은 생물들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종, 집단을 이루며 사는 종,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생존방식을 터득한 종들이었다는 생물학 보고서들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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