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를 넘어라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를 넘어라
  • 서울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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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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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금융위기보다 경기둔화 대비할 때"

미국發 금융위기 유럽 넘어 아시아로 확대
은행·기업, 비상경영 돌입 "자금난 대비하라"
 
[서울파이낸스 금융·산업팀]미국발 금융위기 파고가 유럽을 넘어 아시아 시장으로 전파 경로를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위기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유럽도 결국 물가불안 우려에도 불구, 전세계적인 금리인하 공조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여타 아시아국가에 비해 글로벌 금융불안의 피해강도가 크다. 연일 치솟는 원·달러 환율은 국내 은행들은 물론 기업들의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시중금리의 고공행진은 가계와 중소기업들의 대출 상환능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이상 낙관적인 전망을 얘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 졌다"며 "이제는 경기둔화에 본격 대비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증시패닉, 언제까지?
국내 증시가 연일 폭락세를 이어가며 바닥 없는 장세를 이어가자 증시 전문가들은 "더이상 저점을 예측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최근 증시는 펀더멘털이 아닌 투자자들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는 '비이성적인 장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애널리스트는 "현재 공황상태에서는 주가 저점을 예상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저점의 의미도 찾기 힘들다"며 "금융위기가 완화되더라도 주식시장은 경기하강과 실적둔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한국은행이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공조에 발맞춰 10월 기준금리를 5.00%로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금융불안의 근원지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쉽게 안정세로 접어들긴 힘들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교보증권 황빈아 애널리스트는 "금융불안 해소를 위한 주요국들의 정책공조는 위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을 낮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국내 증시는 글로벌 악재에 더해 '환율'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500원에 바짝 다가선 환율이 국내 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환율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차손을 확대시켜 증시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으며, 외국인 이탈은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황 애널리스트는 "최근 환율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신용위기에 따른 달러 자금경색 및 경상수요 적자지만 여기에 불안심리에 기인한 달러 가수요가 환율 급등을 부추겼다"며 "국내 증시 안정을 위한 일차적인 변수는 환율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은 트깋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을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환율이 1500원일 때 중소기업들의 손실액은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더해 최근 부진한 경제지표들은 향후 경기둔화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IMF는 10월 한국의 성장률을 기존 4.3%에서 3.5%로 낮췄으며, 4주 평균 신규실업수당청구건수도 48만건을 넘어서는 등 7년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황 애널리스트는 "이미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파고 들어 단기간에 경기침체가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며 "각국의 정책공조 및 추가 부양책은 금융시장 붕괴 우려를 억제할 수 있지만 실물경제 지표와 실적에 따라 변동성 큰 장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신뢰회복' 나서야 
증시폭락과 환율급등 현상이 지속되면서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급등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거론되며 경제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한국 외환시장의 혼란에 대한 책임이 강 장관의 말과 행동에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8일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은 '늘어나는 한국 은행의 스트레스(Banking Stress Growing in South Korea)'라는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화가 난 이유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발언과 조치들이 역효과를 내는 것은 물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은행들이 외환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다고 선언한 이후 금융주들이 폭락했고, 재정부 차관이 은행의 유동성 문제가 '연말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우려를 더욱 키웠다는 것.

다만 한국경제 대해선 "은행들의 유동성경색을 풀어줄 정도로 충분한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감안했을 때 과거 외환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의 미숙한 대응과 정책실기가 반복되자 '경제위기에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 간 정책공조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상황에서 각종 대책이 통하지 않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선 강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강 장관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경제팀은 '물 위에 오리'를 자처하며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며 각종 금융위기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시장의 흐름대로 단계별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등 최근에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경제주체 모두 정부를 믿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또,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외환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국내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달러 단기자금대출(TAF) 운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미 연준과의 달러스왑라인 구축 노력은 물론 헤지펀드의 외환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 '자구노력' 강화
이에 은행들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금융위기와 경기둔화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KB금융지주는 지난 9일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오는 11월 3일 예정된 출범기념 리셉션 행사를 취소하고 그룹 임원의 임금도 동결하기로 했다. 또 그룹의 광고계획도 대폭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황영기 회장은 이날 전계열사 사장단 보낸 서한을 통해 "수익성 하락과 늘어나는 비용으로 경영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며 "수익과 비용 측면에서 획기적인 개선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신한은행도 전담반(TFT)을 꾸려 신용경색의 장기화 등 각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찾는 중이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지난 1일 월례 조회에서 마지막에 살아남으려면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지혜를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연체율 관리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월 이후 경기 민감 업종의 연체율이 급격한 상승세로 전화했다"며 "신용경색과 글로벌 경기둔화로 제조업의 연체율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은행의 건전성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금융도 위기대응 전담반을 구성해 주요 계열사 리스크 담당 임원들이 매주 회의를 열고, 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에는 이팔성 회장 주재의 계열사 최고 경영진 회의를 개최해 시장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지난 7월 말 실적발표회에서 김승유회 장이 "비상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발언 이후 그룹차원의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은행들은 키코손실에 대한 지원에도 나섰다.
지난달 30일 주요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실무 대책반을 가동하고 세부적인 지원 기준이나 면책 범위 등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키코손실 등으로 인해 흑자부도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중소기업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서둘러야 한다는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하나은행이 키코 손실 등으로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태산LCD의 손실을 떠안게 되는 것을 보면서 중소기업과 은행의 동반부실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 대응책 마련 '분주'
산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이 중심이 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실물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대미 국산차 수출은 3만3074대를 기록했다. 2003년 7월(2만9487대) 이후 5년 1개월 만의 최저치다. 미국의 자동차 구매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96만5160대에 그쳤다. 100만대를 밑돈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환율 상승으로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큰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닥을 치는 듯 했던 반도체 시장도 ‘더블딥’(침체 뒤 반짝 회복하다가 재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 회복이 지난 3년간의 과잉 투자를 해소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더블딥이 내년 초까지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환율로 인한 물가상승 압박에 따라 유통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마트 3사의 9월 매출실적은 각각 전년동기 대비 1.7%·5.0%·5.5% 감소했다.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은 정유·항공업체의 사정은 더욱 나쁘다. 상반기 3500억원 가량의 환차손을 입은 SK에너지는 환율이 1원 상승할 때마다 30억원 정도의 손해를 보고 항공업계 역시 환율이 10원 오르면 대한항공은 연간 200억원, 아시아나는 75억원 가량의 비용 부담이 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치솟는 환율로 인한 달러와 현금부족을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의 경우 국제 금융위기가 국내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며 계열사별로 위기대응 전략 강구에 나섰다.
 
삼성은 지난 8일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주재로 수요 사장단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금융·실물경기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 받고 계열사별 ‘컨틴전시 플랜’ 마련을 집중 논의했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이후 총체적이고 신속한 그룹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사장단협의회에선 글로벌 금융위기가 내년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진단하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인 위기 대응을 위한 비상경영체제 가동 여부와 리스크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LG는 지난 7일 구본무 회장 주재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각 계열사 경영진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원 세미나를 열고 정신 재무장에 나섰다.
 
구 회장은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하반기 사업이 상반기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때 환율·금리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보다 철저히 대비하고 차별화된 전략 수립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현금과 달러 등 유동성 확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계열사별 재무점검에 나선 상태다.

이미 8월 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현대·기아차는 지난 6일 정몽구 회장 주재로 김용환 경영기획실 사장,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금의 경제위기에 신속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조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그러자면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앉아서 전화로 대충 확인하려 들지 말고 현장에 직접 뛰어가서 눈으로 확인하라”고 지적했다. 현대·기아차는 환율 변동성을 고려해 4분기 재무계획을 수정하는 한편, 원가 절감과 불요불급한 자산정리 등 긴축경영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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