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줄 모르는 정부
배울 줄 모르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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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희 주필 © 서울파이낸스
지난 25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체 경제가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7000억 달러의 금융구제안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미 의회에 같은 액수의 구제금융 승인을 요청한 상태에서 정부 통제권의 적절성 여부를 둘러싸고 의회에서 논란이 일자 다급해져 취해진 조치로 보인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미국의 위기는 부동산 버블에 적극 동참했던 거대 금융업체들이 버블 붕괴로 인해 위기에 직면함으로써 발생됐다. 부동산 시장 규제에 적극적이던 한국과 달리 통제되지 않은 자본들이 금융을 매개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키우도록 방치된 결과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고도화의 핵심 코드는 보다 많은 부가가치의 창출이었다. 그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업종이 금융업이다. 즉, 자본주의의 고도화 과정에 아무런 사회적 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실물 없는 부가가치가 자본시장을 지배해감으로써 결국 모든 자본 가치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데만 주력해온 미국이 이제 그 당연한 결말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미국이 위기 탈출을 위해 금융자본에 대한 일정한 규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선택한 것이 구제금융안이다. 그 규제 장치가 충분하냐를 놓고 미 의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결국 구제 금융을 신청한 금융업체들은 스스로 규제를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부동산 버블로 인해 거품 발생국인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을 일순간에 위험에 빠트리고 각국 주식시장을 며칠간 연속적으로 초토화시키는 것을 보면서도 전 정권의 모든 정책을 부정하려는 목표에만 골몰해 위험한 정책 선택을 서슴치 않는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추락하는 속에서 유독 한국 주식시장만 독야청청하도록 연기금 투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찌나 서슬이 퍼런지 그게 누구 돈인데 그리 함부로 위험한 시장에 던져 넣느냐고 반문하는 소리조차 사라진 침묵의 땅이 돼가고 있다.

뿐만인가. 한국 사회에 부동산 버블을 키울 정책을 밀어붙인다. 부동산 버블의 위험은 이미 십수년 전 일본을 통해 보았고 지금 미국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오직 생짜 자본주의의 모범국가가 되기 위해 자본에는 더 큰 날개를 달아주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은 좌파적 발상이고 행동이니 모두 척결해야 한다고 믿는 듯 행동한다.

4백여년 전 우리 조상들이 소중화(小中華)를 내세우며 사대주의의 극치를 향해 달리다 민족이 세계사의 흐름에서 탈락, 비참한 식민지의 역사를 경험하게 했던 모습이 자본주의 전범국가가 되겠다는 오늘날 한국 정부 위에 오버랩 된다. 4백여년 전 그때는 중국 땅에서 조선을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도구로 쓰는 줄도 모르고 게서 배운 유학을 신앙하며 소중화의 기치를 높이 들었었다. 지금은 우리의 주인이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우리들 스스로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세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는 ‘변화’라고 고대로부터 가르친 민족의 살아있는 정신은 외면한 채 유학의 자리를 대신하는 교조적 자본주의의 암송에 정신이 팔린 모양새다.

자본주의는 현실을 따라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어서 장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다. 공산주의의 바람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어도 현실 정치체제로서는 실패한 역사로 마감한 이유는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 후 곧바로 유연성을 잃고 교조적 도그마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목표 가운데 상당 부분을 자체 흡수함으로써 대중적 흡인력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핵을 차지한 미국마저도 대공황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자본의 무한자유 대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는 국민의 자산을 퍼부어 거품 낀 자본시장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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