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리먼브라더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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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금융시장에 던져진 리먼브라더스라는 폭탄이 북한 핵보다 덜 위험하다는 확신이 안 선다. 핵폭탄처럼 눈 앞에서 터지는 모양이야 없을지 모르나 이미 미국 내에서도 소화하기 버겁게 된 부실채권 덩어리 리먼브라더스는 원폭보다 무섭다는 세균폭탄을 연상시킨다.
그런 리먼브라더스를 거액의 국내 공공자금을 끌어 붙여가며 사들이도록 조종하는 손이 무섭다. 공적자금 회수율이 낮은 부실 공기업으로 판결해 민영화 스케줄을 잡아놓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부실채권 덩어리인 리먼브라더스를 인수케 한다는 소식이 이미 폭넓게 전해졌다. 산업은행만으로는 힘에 부치니 다른 은행들을 더 붙인다는 소문에 은행주의 주가가 춤춘다. 심지어는 무엇보다 안정성에 초점을 둔 투자를 해야 할 군인공제회를 인수자로 끌어들인다니 기가 막힌다. 나아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국내 부실채권 인수로도 모자라 미국 금융의 쓰레받기로 발전시켜 갈 모양이라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한국 정부는 지금 금융산업 글로벌화를 빌미로 이제 미국 금융의 쓰레받기를 지향하는 것인가. 전 세계 금융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진원지나 진배없는 리먼브라더스는 이미 미국에서도 정부의 지원 없이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진단이 내려진 대표적인 부실금융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부실금융기관을 이미 부실하다고 민영화의 칼날을 들이댄 산업은행이 인수한다고 들썩이는 데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으로 보기는 아무리 봐도 무리다.
부실이 커도 기본 덩치가 작은 금융회사라면 그나마 위험이 적으니 한번 실험해보자고 나설 수도 있다. 어차피 해외 금융기관 인수를 통한 덩치 키우기도 필요하고 업무영역을 확대해 나가기도 해야 하니 글로벌 체험학습을 위한 교육비라고 여기고 웬만한 비용을 들인다는 데 가로막고 나설 일만도 아닐 터이다.
그러나 리먼브라더스는 그 덩치가 미국 금융을 휘저을 정도로 크다. 미국 4위 규모를 자랑하는 투자은행인 것이다. 그런 만큼 회사를 파국으로 몰아갈 정도의 부실채권이라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분명해진다.
오죽하면 정부에서도 산업은행 단독으로는 25% 지분 인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겨 다른 국내 금융기관과의 합작 인수를 권하고 있겠는가. 게다가 직업군인들의 노후를 지탱해줄 군인공제회까지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기로 확정됐다니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며 그간 정부 눈치 보기에 길들여질 대로 길든 은행들 처지로 버티고만 있기도 어려울 듯하다. 군인공제회를 끌어들일 정도라면 다른 무리수라도 더 둘 수 있다는 강압적 권유를 무시할 배짱이 있을 성싶지 않은 것이다.
외환시장엔 성급하게 개입해 돈만 다 써버리고 실효도 못 거둔 정부가 70·80년대 조자룡 헌 칼 쓰듯 공적기금들을 휘두르다 금융시장을 망치고 기금들을 바닥냈던 전례를 집권하자마자 서둘러 되밟고 있다. 그러니 정부가 무슨 의도로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설지는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고스란히 다 드러나 보일 참이다.
지난 10년을 맹렬히 비난한 이슈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하나는 금융기관 살리자고 공적자금들을 부실기업에 쏟아 부은 결과 미회수 채권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현 정부가 부실 덩어리인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을 끌어안기 위해 국내 금융기관과 연·기금 등에도 여기저기 무거운 짐을 지우려는 태세다. 이미 꺼져가는 국내 주식 살리자고 국민연금 2조원을 끌어들인 정부이니 급하면 그 국민연금으로 정크펀드 매입인들 못 시킬까.
금융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투자은행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하는 것도 맞고, 해외시장 영업에 손쉽게 안착하자면 현지 금융회사들을 매입하는 게 빠르고도 확실한 방법인 것도 맞다. 그러나 거의 정크펀드 수준의 금융회사 하나 사자고 캠코까지 동원해가며 간신히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맞춘 국내 금융을 또다시 빚더미 위에 올려야 하는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 된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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