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IMF 부르려 하나
또다시 IMF 부르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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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혼란스러운 경제정책이 자꾸 11년 전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28·29일 잇달아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들과 현재 국내시장의 여러 동향과 정부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 같은 불안을 노파심이라고 도외시할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8월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말 기준 국제투자대조표는 이미 한국이 순채무국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환율은 이미 정부의 통제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 잇달아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중 국제수지 동향은 24억5천만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 1997년 환란 이후 최대 수준에 도달했다.
이날 추석물가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서서 국제유가 하락으로 물가상승률이 6%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발표한 직후 이를 반박이라도 하듯 우리의 주 석유수입선인 두바이유 가격이 이틀 연속 상승했다는 뉴스가 뒤따라 나온다.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기는 강 장관만도 아니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역시 9월 금융위기설과 10월 외환위기설에 대해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집권여당의 의원들을 향해 장담했다. 외채가 크게 늘고 있지만 단기외채가 늘어난 상당 부분은 국내 영업중인 외국계 은행의 채무이고 또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선물환 매도·매수가 활발해 미래 수익에 기반한 일시적 차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율은 지금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라는 불안한 시선을 잠재우기에는 현실적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장치가 매우 미흡하다. 우선 유동외채는 늘고 외환보유고는 줄어들어 외환당국이 실제로 시장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가용외화는 150억달러에 불과하다 한다. 8월 한달간 어설픈 시장개입으로 효과도 못 본 채 100억달러 안팎의 외화를 날렸다.
주가가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사상 최대 규모인 96억3천만달러의 자금을 회수, 증권투자수지가 사장 최대 규모인 88억6천만달러의 유출초과를 기록했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은 소득 대비 생활비 지출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실수요층의 구매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게 늘려 지은 지방 아파트들은 미분양사태가 속출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여당 내에서 부동산 시장대책의 유연화가 거론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가지만 문제가 되면 시간의 문제일 뿐 해결이 가능하니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총체적으로 위험이 밀려드는데 정부가 낙관적 전망만 늘어놓는 것은 이미 지난 11년 전에도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위험한 행태다.
당시에도 정부는 낙관적 전망만 쏟아냈고 대다수의 언론들마저 해외발 각종 우려들을 무시하고 묵살했었다. 동아시아의 외환위기 도미노를 우려하는 소리에도 “우리는 염려 없다”고 덮어두기에 급급했다가 국가부도 위기로까지 몰렸었다.
지금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20~30년 전의 시장으로만 보이는 듯하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시장이 순진한 유치원생들처럼 따라주길 기대하고 서툰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저절로 걱정이 터져 나온다.
사회 양극화의 우려는 그 당시와 다름없이 여전히 불온한 이들의 선동으로 보이고 재벌 1인의 개인재산이 100조 이상으로 불어난 시대에 정부의 힘에 대한 과신이 오히려 늘어난 게 아닌가 싶다. 그 믿음 속에는 규제를 풀어주면 재벌들이 국가를 다 먹여 살려줄 것이라는 아름다운 착각도 포함돼 있을 터이다. 그러니 지금 재벌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늘리겠다고 정부에 화답할 때 한편으로는 중간층 이상의 일자리가 더 위험해지는 조삼모사의 부질없고도 민망한 눈속임임이 뻔함에도 자랑과 찬양 일색인 게다.
앞길이 막막하고 답답할수록 판타지가 더 그립다. 그러나 하릴없는 백수가 백일몽을 꾸는 것은 용납할 수 있어도 5천만의 미래를 맡은 정부·여당이 그래서는 죄인 될 일만 남는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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